대전은 용과 관련된 지명이 유난히 많은 지역으로, 용의 승천이나 이무기의 좌절에 얽힌 다양한 전설이 마을 곳곳에 전해지며 인고의 시간과 신중함의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특히 가뭄을 해결한 용왕의 아들이나 승천에 실패해 흙덩이가 된 이무기 이야기는 이들이 단순한 상상의 동물을 넘어 마을을 지키는 신령한 존재로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전설들은 비록 뜻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인연을 기다리는 모든 존재의 꿈이 언젠가 실현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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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 동구 이사동에서 기우제를 지내던 용바위 사진=한소민 소장 |
대전에는 유난히 용과 관련된 지명이 많습니다. 용운동과 용전동, 비룡동, 용두동, 용문동처럼 '용' 자가 들어간 동 이름은 물론 용소와 용바위, 용수골, 용태울 같은 마을 지명에서도 용의 흔적을 만날 수 있지요.
그만큼 전해지는 이야기도 다양합니다. 비룡동과 용운동 용수골에는 용이 하늘로 날아올랐다는 이야기가, 산장산의 용바위에는 장사가 태어날 때 아이를 받던 사람이 무릎을 꿇은 자국과 갓난아기를 씻긴 웅덩이라는 사연이 담겨있습니다. 이사동에는 비가 오지 않을 때 기우제를 올린 용바위가 있지요.
하늘로 오르려다 마지막 순간에 뜻을 이루지 못한 이무기의 전설도 있습니다. 산직동 용태울과 가수원동 용수터에는 개울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는 순간, 아낙네가 "용이 올라간다"고 외치거나 놀라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부정을 타 땅으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무기가 용이 되려면 오랜 시간 공을 들이며 때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용이 하늘로 오르는 순간에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아야 했지요. 이무기의 승천 전설은 큰 뜻을 이루기 위한 인고의 시간과 마지막 순간까지 신중해야 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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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이 꿈틀거리며 지나간 흔적이라는 대전시 서구 산직동 용태울 사진=한소민 소장 |
우리 옛 기록에서도 용과 이무기는 물과 비를 다스리는 신령한 존재로 나타납니다. 『삼국유사』의 「보양이목」에는 보양 스님과 용왕의 아들 이목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중국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오던 보양은 서해 용궁에 초대되어 경전을 읽어 주었습니다. 용왕은 그 보답으로 아들 이목을 보양과 함께 보내며 절을 세우도록 했고 이목은 절 옆의 작은 연못에 살면서 보양을 도왔지요.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자 이목은 보양의 부탁을 받고 비를 내려 마을을 구했지만 하늘의 허락 없이 비를 내렸다는 이유로 벌을 받을 처지가 되었지요. 보양은 이목을 마루 아래 숨겨 주고 하늘의 사자가 내려와 이목을 찾자 꾀를 내어 뜰 앞의 배나무(梨木)를 가리켰습니다. 이목의 이름과 배나무를 뜻하는 '이목(梨木)'이 같은 소리라는 점을 이용한 것이지요. 하늘의 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내린 뒤 돌아갔고, 숨어 있던 이목이 나와 쓰러진 배나무를 다시 살려 놓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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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태울과 용바위 지명이 적힌 옛 버스 정류장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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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바위 버스 정류장의 최근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
이목이 가뭄에 시달리던 사람들을 구했다면, 용두동의 이무기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원을 받는 존재입니다. 옛날 용두동의 연못에는 천 년을 채우면 용으로 승천할 수 있다는 옥황상제의 약속을 받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습니다. 천 년을 거의 채워 갈 무렵, 연못의 물이 점점 말라 가자 이무기의 마음은 조급해졌지요. 그러던 어느 날 햇볕이 쨍쨍한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이무기는 마침내 승천할 때가 온 줄 알고 연못 밖으로 몸을 내밀어 온 힘을 다해 하늘로 솟구쳤습니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기에 약속을 어겼다는 이유로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진흙을 뒤집어쓰고 피를 흘리던 이무기는 마침내 커다란 흙덩이로 변했고, 언젠가 다시 승천할 날을 기다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용두동 사람들은 용신제를 올려 이무기의 못다 이룬 꿈을 위로하며 마을을 지켜 주는 용신으로 받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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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머리에 해당된다는 대전시 중구 용두동 용머리어린이공원에 자리한 승천하는 용 조각상 사진=한소민 소장 |
이무기가 용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모습이 변하는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수련과 기다림은 물론이려니와 마지막 순간까지 신중함을 기하며 자신을 다스려야 비로소 하늘에 오를 수 있었지요. 그러나 아직 하늘에 오르지 못했다고 해서 그 꿈마저 끝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전의 산과 강, 그리고 마을 곳곳에서 여전히 용이 될 날을 기다리는 많은 이무기들이 언젠가 저마다의 때와 인연을 만나 힘껏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기원해 봅니다.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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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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