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땅 위에는 길이란 게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루쉰의 소설 ‘고향’ 중>
‘쇄국이냐 개화냐’로 나라가 삼분오열 됐던 구한말, 새로운 땅을 밟으며 길을 만들어간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 일본 유학생이며 미국 유학생이었던 유길준.
노론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난 유길준은 일찍이 개화사상의 선구자였던 박규수 문하에 들어가 신문물에 접하게 됐다. 박규수의 집에서 처음으로 본 지구본은 유길준의 앞날을 예견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출세가 보장된 집안이었지만 뇌물과 배경, 연줄이 난무하는 과거시험을 거부하고 1881년 일본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으로 선발돼 일본으로 건너갔다. 유길준은 메이지유신 이후 급변하는 일본에 충격을 받았다.
도쿄에 체류하면서 정치, 군사, 경제 등을 배우며 아직도 갈팡질팡하는 고국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라밖에서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을 일깨워주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일본을 변화시킨 미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됐다.
1883년 유길준은 견미사절단인 보빙사에 자원해 미국으로 향했다.
한복에 두루마리를 입고 갓을 쓴 조선인 유길준이 처음으로 밟은 미국 땅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유학생신분으로 남아, 체류하는 동안 유길준은 학업에 매진했으며 미국을 뜯어보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축지법을 쓰는 것 같은 기차를 보면서 조국의 개화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되새겼고, 자신의 상투를 자르고, 저고리를 벗어던지며 양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실용적인 것에 눈을 뜨기도 했다. 그리고 문호를 개항해 조선의 근대화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꿈꿨다.
갑신정변(1884년)이 일어나자 고종은 그에게 귀국하라는 친서를 보냈고, 유길준은 1885년 귀국길에 대서양을 건너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봤다.
세계를 돌면서 얻은 지식은 1895년 오늘(1일) ‘서유견문’으로 발간됐다.
각국의 옷, 음식, 집에 대한 묘사부터 학문, 종교, 교육제도에 대한 설명을 수록해 최초로 한글과 한문 혼용체로 쓰였다. 조선 백성 누구나 차별 없이 책을 읽을 수 있게 하기위한 배려였다. 그러나 문을 여느냐 마느냐로 시끄러웠던 조선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
1896년 아관파천 이후 친러시아파가 득세하면서 개화파 유길준은 일본으로 망명을 하게 됐고 ‘서유견문'은 금서가 됐다.
개화로 나라의 근대화와 부국강병의 길을 가고자 했던 유길준의 꿈은 그렇게 찢겨져나가고 말았다./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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