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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순천, 맛도 즐거움도 허벌나게 많더라

관광객 반하게 하는 생태습지, 청춘창고, 국가정원
한정식 맛집에서 즐기는 육해공에 공식주 하늘담까지

박새롬 기자

박새롬 기자

  • 승인 2018-12-03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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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경.
늦가을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갈색일 것이다. 가을의 절정을 장식했던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이 지고 핑크 뮬리에 열광하던 시월이 가고나면 갈대와 억새가 그 자리를 채운다. 수확을 마친 땅은 진한 갈색으로 무르익은 속을 꺼내보이고 갈대는 다가올 겨울을 맞이하듯 하늘을 향해 연한 갈색의 보들보들한 손을 내민다. 순천하면 떠오르는 순천만과 갈대밭은 그런 가을이면 떠오르는 곳이다. 때마침 원광보건대 학교기업 원광여행사에서 마련한 순천 남도 바닷길 대표음식 코스 개발 및 팸투어에 참여하는 행운을 얻었다. 남쪽의 넓은 품을 향해 그렇게 가을 끝자락의 여행을 떠났다.



여행은 순천역에서 시작됐다. 순천역 앞은 순천도심순환코스를 달리는 트롤리버스나 송광사·선암사방면 관광코스의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대부분의 순천여행이 출발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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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드라마 촬영장.
역을 출발해 팸투어단이 처음 도착한 곳은 순천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인 드라마 촬영장이었다. 순천 드라마촬영장은 1960~1980년대 서울 변두리와 달동네, 순천 읍내거리를 재현한 곳으로 추억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드라마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제빵왕 김탁구>와 영화 <늑대소년>등 다양한 작품이 이 곳을 담아갔다. 10~20대 관광객들이 교복을 입고 드라마 속 옛 동네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 예순 무렵의 어르신들은 천천히 추억을 음미하며 걷는다.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이다.



다음은 순천향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남유형문화재 제172호로 수해로 여러차례 이전한 끝에 1801년 지금의 금곡동에 자리잡게 됐다. 안쪽에는 수령이 15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있어 운치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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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정의 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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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정의 백반 반찬.
향교가 주는 따뜻한 분위기는 점심을 먹으러 간 청수정으로 이어졌다. 사회적 기업 '청수정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청수정은 지역주민들이 친환경 자연밥상 백반을 판매하는 곳이다. 한상 가득 올라온 제육볶음과 각종 나물, 연근조림, 전, 오이무침 등 푸짐하면서 맛깔나는 반찬은 밥 공기가 비어가는 걸 아쉽게 했다. 같은 종류의 반찬은 세상에 허벌나게 많을테지만 입 짧은 이도 손을 멈추지 못할 만큼 이 곳의 음식은 유독 맛이 좋았다. 식사 후 만난 청수정 협동조합장의 이야기에 따르면 청수정은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커뮤니티 공간에서 음료 판매로 시작했다. 그러나 주민들은 바리스타 일을 낯설어했고 운영이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주민들이 잘 할 수 있는 백반으로 주력 메뉴를 변경했다. 엄마밥집 콘셉트는 젊은층이 원하는 가정식 스타일과 통했고 줄서서 찾는 맛집이 됐다. 맛은 역사에서 우러났다. 오랜 세월 속, 향교 근처였던 동네에는 학생들의 공부를 도와 음식 바라지를 하는 여성들이 많았다. 그때부터 내려온 손맛이 지금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기다리다 돌아가지 않도록 앞으로는 예약을 받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청수정을 나선 뒤 문화의 거리를 걸어내려가며 배를 꺼뜨렸다. 순천만칠게빵을 맛 볼 차례였다. 처음 듣는 칠게빵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다. 전국에 비슷한 빵은 많았다. 빵틀만 지역 특산물 모양으로 만들고 이름 붙인 게 전부인 경우가 허다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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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칠게빵.앞면에 집게발을 이용해 순천만의'S'를 표현했다.
칠게빵은 진짜였다. 정겹게 웃고 있는 칠게모양 빵을 베어 물면 거칠지 않게 살짝 씹히는 알맹이 같은 게 느껴진다. 칠게를 통째로 간 분말을 넣었기 때문이다. 또 밀가루가 아닌 쌀로 만들어 식어도 맛과 모양이 그대로 유지된다. 밀가루 빵보다 소화가 잘 되고 알레르기 걱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다.

순천만칠게빵을 만든 놀식품 김용환 대표의 말처럼 이 빵은 순천만을 통째로 먹는 것과 같았다. 순천만에서 서식하는 칠게를 넣은데다 빵을 만든 쌀도 순천만 갈대쌀이다. 빵 표면에는 칠게의 집게발을 이용해 순천만의 S자 모양까지 표현했다. 놀식품의 '놀'은 순천만의 노을이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으로, 로고도 노을지는 순천만을 담았다.

함께 맛본 화월당 볼카스테라는 노란 카스테라 안에 단맛이 적당한 팥소가 들어있다. 부드럽고 촉촉한 카스테라의 맛은 왜 화월당이 1928년부터 3대를 이어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중 하나가 됐는지 느낄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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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창고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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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창고에서 맛볼 수 있는 철판 아이스크림.
다음 행선지는 청년들의 창업·문화공간인 청춘창고였다. 정부 양곡을 보관하던 창고를 리모델링해서 청년 사업가들의 창업을 지원하고 문화공연 이벤트를 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순천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기차를 타고 오는 관광객들이 찾아오기에도 좋다. 실제로 해마다 12만명의 내일로 여행자들이 방문한다고 한다. 1층에는 다양한 메뉴의 음식점포가 운영되고 있고 2층에는 공예매장이 위치해있다. 철판아이스크림을 들고 창고 곳곳을 둘러봤다. 금속소재 생활용품, 도자기 제품 등 공예품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운영하는 곳도 있다. 1층과 2층 사이 마련된 계단식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것도 특색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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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국가정원.
한정된 팸투어 시간은 다음 목적지인 순천만국가정원과 순천만 생태습지를 골고루 둘러보기엔 빠듯했다. 국가정원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20분. 동문에서 직진으로 10분 정도 들어가서 일본, 태국 정원과 호수정원까지만 보고 돌아와야 다음 코스에 맞출 수 있었다. 세계 각국의 특색있는 정원이 모여있는 대한민국 국가정원 1호를 너무 짧게 봐야 해서 아쉬웠다. 이 아쉬움이 순천을 다시 찾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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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생태습지.
생태습지는 갈대밭만 거닌다면 여유롭지만, 순천만을 내려다볼 수 있는 메인 전망대까지 가기에는 부족한 시간이 주어졌다. 가이드는 무리라고 했지만 욕심을 내 용봉산 전망대까지 올라갔다. 노을지는 순천만을 보지 않으면 순천만 생태습지를 다 봤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국가정원을 스치듯 본 아쉬움이 발걸음의 속도를 높이는 동력이 됐다. 전망대에는 같은 마음으로 해가 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곡선을 따라 들어오는 배, 그 너머 순천만이 몸을 누이는 해를 따라 금빛으로 물들었다.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도 황금빛 환희에 젖어 들었다. 해는 출구로 돌아가는 길의 갈대밭까지 넉넉하게 비췄다. 물결처럼 출렁이는 갈대가 그 빛에 화답하듯 하얗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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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정의 육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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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정에서 맛 볼 수 있는 다양한 메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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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공식주 하늘담.


저녁식사를 위해 방문한 신화정은 2018년도 제25회 남도음식문화큰잔치 요리경연대회 일반부 대상을 수상한 한정식 맛집이다.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남도바닷길 음식 메뉴' 개발 이후 남도바닷길 음식 전문 판매점으로 지정돼, 남도바닷길을 이미지화하고 순천에서 나는 각종 식재료를 활용해 육해공을 아우르는 맛을 제공하고 있다. 앉을 때부터 서대전, 문어숙회 등의 음식으로 빈 공간 없이 꽉 찼던 테이블은 금세 새 음식이 나와서 부지런히 수저를 움직이게 했다. 음식의 양은 테이블 당 인원수에 맞춰 알맞게 제공됐다. 내륙에서 맛보기 어려운 칠게장 같은 메뉴는 여행자의 입 안을 풍성한 경험으로 채워줬다. 순천시 공식주 '하늘담'이 향긋한 매실향으로 맛을 돋웠다. 순천에서 생산된 매실만을 이용해 만들었다니. 의미도 맛만큼 깊었다. 여행이 주는 행복을 다시 한 번 음미했다.
박새롬 기자 ono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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