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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초등생 사이 유행하는 차별·혐오 표현은 어른 책임

이승규 기자

이승규 기자

  • 승인 2019-11-17 14:39

신문게재 2019-11-18 23면

빈부 격차는 어느 사회에서나 있기 마련이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자유민주주의 등 사회 구조가 달라도 빈부 격차를 바라보는 시각차는 언제나 사회문제의 한 편을 차지한다. 금수저, 흑수저 논란을 낳는 우리나라는 그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고 벽만 두꺼워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사는 곳과 부모의 소득에 따라 차별과 혐오를 담은 신조어가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큰 문제다.

월거지(월세 사는 거지), 전거지(전세 사는 거지), 빌거(빌라 사는 거지), 엘사(LH 사는 사람) 등은 단순한 놀림거리가 아니다.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차별과 혐오로 낙인을 찍어 버린다. 소득이 적은 부모에 대한 차별은 더 노골적이다. 대놓고 벌레 취급이다. 이른바 월수입이 200만 원 이하면 이백충, 300만 원 이하면 삼백충이라고 놀려댄다. 동심은 온데간데없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런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표현이 일상화된 데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물질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있는지 잘 보여준다. 오죽하면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지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입에서 이런 표현들이 나오는 데는 어른들의 책임이 막중하다. 다름 아닌 어른들이 사는 곳과 부모의 소득을 파악해 친하게 지낼 것인지, 멀리할 것인지 친구 관계를 대놓고 정리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한국 부모와 미국 부모, 일본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특징이 생각난다. 즉, 미국 부모는 자녀에게 늘 봉사와 기부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일본 부모는 항상 상대에 대한 배려부터 이해시킨다고 하는데 우리는 어떨까. 한마디로 아이가 절대 기죽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기만 가르친다. 그런 만큼 '월거지', '전거지', '빌거', '엘사' 등의 표현은 아이들의 친구 관계를 어른들이 멋대로 갈라놓는다. 미국과 일본 부모의 자녀교육이 새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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