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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바칩니다”… ‘비운의 소리꾼‘ 딸, 왕해경 명창의 ‘눈물의 사부곡(思父曲)’

10여년 만에 다시 돌아온 왕해경 명창, ‘초혼’ 발매… 혼자서 ‘작사·작곡·프로듀싱’ 소화
아버지 그리움 담은 ‘초혼’, 9일 각종 포털과 음원 사이트서 첫 공개

손도언 기자

손도언 기자

  • 승인 2020-06-09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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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왕기창 명창의 딸 왕해경 명창… 왕해경 명창은 9일 자신의 싱글앨범인 국악발라드 '초혼'을 음원사이트 등에 공개했다. 초혼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
'손 내밀면 닿을까 선명한 너의 얼굴, 귀 기울이면 들릴까 맑았던 너의 목소리, 눈 감으면 잊힐까 행복했던 순간, 눈물로 씻으면 잊힐까 헤어진 그 순간의 그대…'

왕해경(여·43) 판소리 여류(女流)명창이 사랑하는 아버지이자, 판소리계 큰 스승을 떠나보낸 뒤 눈물로 쓴 국악발라드 첫 노랫말 가사다.

'그대에게 마지막 못 다했던 말들이 가슴 아프게 남아서 그 이름 불러본다', 곡 중간으로 이어지는 가사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애절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떠나간 그대는 대답 없이 나 홀로 이 자리에…', 곡 끝부분은 국악계에서 왕해경 명창의 현재 모습과 많이 닮았다.

그가 긴 공백을 깨고 다시 돌아왔다. 10여년 만이다.

그는 '현대+전통'을 섞은 국악 발라드 '초혼'으로 대중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초혼은 그가 작사·작곡·프로듀싱 했다.

국악 발라드는 사실, 대중들에게 생소한 음악장르다. 그러나 그가 초혼을 통해 처음 시도했다.

그렇다면 40대 초반의 여류 명창이 애절하게 써내려 간 국악발라드는 어떤 음악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눈물로 쓰고, 가슴으로 작곡한 '눈물의 사부곡(思父曲)'이다.

그의 사부곡은 발매 이전부터 눈물로 국악계를 적셨다.

감성적인 가삿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자신이 걸었던 과거의 모습 등 그의 인생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초혼에 녹아있다.

왕해경
황해경 명창이 9일 저작권협회에 방문해 국악발라드 '초혼'을 등록했다. 초혼은 왕해경 명창이 작사·작곡·프로듀싱 했다.


지난 주말, 서울시 중구 국립극장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눈물짓게 곡을 쓴 사연을 들어봤다.

왕해경 명창의 아버지는 7~80년대 국악계를 주름 잡았던 인물이다. 46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바로 왕기창 판소리 명창이다.

남자 소리꾼이 귀한 시절, 자신만의 굵고 웅장한 성음을 보유한 당대 최고의 남성 판소리 명창이었다.

당시 여류 명창들이 판소리계를 장악했던 시절을 감안한다면 왕기창 명창, 즉 남성소리는 귀하고 희귀할 정도였다.

왕기창 명창은 1990년도 후반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는 국립창극단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극장과 단원 간의 갈등' 등으로 동료들과 함께 국립창극단을 나왔다.

창극단에서 나온 그는 노동판을 전전하면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는 이때 술에 의지했고 건강은 점점 악화됐다.

40대 중반, 그는 감기로 인한 폐렴으로 사랑하는 제자이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과 이별했다. 왕해경 명창이 20대 초반 무렵이다.

그래서 국악인들은 왕기창 명창을 꽃이 핀 뒤, 향기를 내 뿜을 무렵 떠난 '비운의 소리꾼'으로 떠올리고 있다.

왕기창 명창은 그녀에게 판소리 스승이자, 든든한 아버지였다.

왕해경 명창은 아버지 품속에서 '동화 속 주인공'처럼 자랐다. 한마디로 꽃길만 걸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타계로 가세가 기울면서 큰 저택에서 단칸방으로 살림살이를 옮겨야했다.

그의 모친 역시 큰 병으로 병상에 들어 누웠고, 오빠인 A 씨는 원양어선 선원으로 일하면서 실종됐다가 1년만에 집에 돌아올 만큼 가정은 어수선했다.

결국 왕해경 명창이 가족을 돌봐야했다. 판소리 명문가에서 태어난 그는 하루아침에 국악계 금수저에서 흑수저 신세가 된 것이다.

"사실 저는 어릴 적 국악계의 금수저였어요. 판소리 명창이 아버지였으니까요. 그래서 주변에서 시기 질투도 많았고 아버지 품속에서 자란 온실 속 화초였어요"

왕 명창은 "김소월의 시 초혼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슬픔을 표출하고 있다"며 "그래서 사랑하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 곡을 썼다"고 설명했다.

왕해경 명창의 싱글앨범 초혼은 9일 인터넷 포털이나 음원사이트에서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왕해경 명창의 친구이자, 동료인 김승택 안산시립국악단 단원이 이 곡에서 해금연주를 맡았다.

왕해경 명창은 전남 목포 전국판소리경연대회 최우수상과 전국 창작국악경연대회 대상 등을 차지하는 등 현재 '국악계의 조수미(소프라노)'로 알려져 있다.

왕해경 명창은 "아버지가 너무 그리워 '초혼'을 만들게 됐다"며 "그리운 아버지가 하늘나라에서 제 음악을 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꿈을 채 펼치지 못하고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이 곡을 바친다"고 덧붙였다.

왕해경 명창은 "이 곡이 저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며 "항상 제 곁에서 응원해주고 등대가 돼 준 김승택 씨 등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왕해경 명창의 가족은 왕기석·왕기철 당대 최고의 판소리 명창이다.
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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