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아들 양성우 코스모내과 내분비내과 원장, 아버지 양종대 코스모내과 대표원장. |
▲양종대 대표원장:아들, 딸이 본래는 일반대학에 갔다가 나중에 다시 의대로 진학해 제가 있는 코스모내과로 와줘서 감사하지요. 종합병원 스타일로 분과별 맞춤형 진료를 하는 게 꿈이었는데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함께 해주니 든든하고 고맙답니다. 아들, 딸, 며느리와 함께 병원에서 진료를 할 수 있으니 흐뭇한 것이 사실입니다. 흔히 이야기할 때 자기가 하던 일을 자식들이 이어받으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데요. 아들, 딸이 원해서 다시 의대에 진학해 의사가 되었으니 이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아버지의 의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양종대 대표원장:저는 어릴 때 몸이 몹시 약했습니다. 제 아버님께서 29세에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는데 저에게 폐결핵을 물려주고 가신 겁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체육 시간에 체육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많이 아팠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폐결핵을 앓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유도와 권투 등 운동을 시작하면서 건강해지기 시작했는데요. 등산도 많이 다녔습니다. 저 자신이 몸이 약하다 보니 건강을 돌보고 싶은 생각에 저의 건강도 지키고, 환자들의 건강도 지키면서 환자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가이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제 자신이 심각한 환자였으니까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의사가 되어보자고 생각했던 겁니다. 을지대학병원에서 스태프로 일할 당시 초대 내과 과장을 역임한 뒤 1981년 양내과를 개원하게 됐습니다. 2009년까지 양내과를 운영하다가 오류동으로 이사 와 코스모내과와 건강검진센터를 운영하게 된 거죠. 양내과가 처음에는 중앙데파트 뒤 대우당 약국 근처에 있었는데 7년을 이 자리에 있다가 시민회관 앞 용두동에서 20년을 지낸 뒤 2009년에 오류동으로 이사와 코스모내과를 개원했으니 코스모내과는 올해로 개원 12주년을 맞은 셈이네요.
저는 본래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고 문과 성향이 많아서 리버럴한 성향 상 외국어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는데요. 대학 시절이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제 책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에도 썼지만 제가 디스크 수술을 두 번 받고 나서 모호한 컨셉만 갖고 먹고 살 수 있을까, 조직에 들어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되더군요. 너무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있다 보니 갑작스러운 디스크가 찾아와 당황스러웠죠.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은 저로 하여금 의사의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학병원은 엄격한 조직사회인데 제 책에서 의사 입문기와 환자들에 대한 에피소드를 많이 다뤄봤습니다.
평생 의사의 길을 걸으시면서 수많은 임상 사례를 갖고 계신 아버님과 한 병원에서 일하면서 환자들의 사례와 상황, 대처방법을 여쭤볼 수 있는 것은 저에게 큰 이점입니다. 제 아버님은 사랑과 인내의 아이콘이십니다. 그런 아버님을 어릴 때부터 존경해 왔습니다.
▲양종대 대표원장:제가 양내과 원장 시절 침례신학대에 가서 신학공부를 하고 신학석사가 된 것처럼 두 개의 전공을 하게 된 것은 아들과 닮았네요. 저는 의학을 한 뒤 신학을 했고, 아들은 경영학을 한 뒤 의학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제 아들과 저는 성향이 많이 다릅니다. 저는 이과적인 생각을 하는데 아들은 감성적이고 문학적이죠. 아들이 저와 다름을 인정해주고 적극적으로 도와주려고 합니다.
책을 쓰고 나서 브런치에도 글을 쓰고 유튜버에 동영상도 올리고 하니까 공중파 SBS에서 칼럼 연재 기회도 얻고 좋은 기회가 많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기회는 얼마던지 널려 있는데 그런 기회를 잘 활용해 열심히 글을 써왔더니 중도일보와 인터뷰 기회도 찾아왔습니다(하하하). 참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2019년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해였습니다. 레지던트 4년 차가 되니까 책임질 환자 수도 적어지고 옵션도 많이 줄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더군요. 그래서 문단에 데뷔할 수 있었습니다.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양종대 대표원장: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양내과를 운영하면서 내과병원 규모를 키우다 보니 환자들에게 의료혜택을 많이 주는 병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족회의를 통해 '우주'를 뜻하는 '코스모스'로 병원 이름을 정했지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 있고 균형 잡힌 우주처럼 사람의 몸도 질서와 균형이 잘 맞춰진 진료를 하는 코스모스내과로 하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발음하기 편하게 코스모스 끝의 '스'는 떼고 코스모내과로 이름을 정한 거죠.
▲양종대 대표원장:2021년에는 코로나를 극복하고 다 회복되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경제와 방역은 양날의 칼 같은 존재인데요. 현재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정부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해 주지 않는데 있습니다. 정부가 희망만 말해주다 보니 경각심이 무너지는 게 큰 일입니다. 현실을 감안해서 방역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방역이 되고 난 다음 경제문제를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전문가 의견을 적극 들어 따라 하는 게 해답입니다.
경험이 굉장히 많은 나이 든 의사들에게도 코로나 팬데믹 현상은 처음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대상이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자극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유튜브를 보는 것은 자제하는 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미흡한 게 있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비판하면 어려워집니다. 다들 패닉에 빠지지 말고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의사들도 전문영역을 나눠서 방역, 역학, 감염병을 연구하고, 일선 임상 의사들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정책 수립 역할을 나눠서 하죠. 정책 수립과 임상의 피드백을 거시적인 안목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 K 방역'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양종대 대표원장:가업을 잇는 아들을 보면서 환자들에게 행복과 건강을 주는 아들에게 아버지로서 최대한 지원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양성우 원장:'양내과' 아들이라는 아버님의 그늘 속에서 아버님이 워낙 뛰어난 의사시라 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버님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해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건강하고 긍정적인 관계로 유지해 나가는 게 참 중요한데 제 아버님은 그 역할을 참으로 잘 해내신 훌륭한 아버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 마음에도 이웃과 환자들에게 존경받는 아버님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아버님은 병원 근처 뒷동네 달동네 시장통을 둘러보시면서 환자들의 어려움을 늘 보살피며 살아오셨습니다.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죠. 불의를 보면 못 참으시는 의협심 강한 성격인 아버님은 잘못된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셨습니다. 달동네 구석구석을 다니시면서 불쌍한 이웃들을 돌보셨죠. 우리 지역 사회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진심을 갖고 사시는 분입니다. 우리 지역 건강에 대해 책임지고 임상의로서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시는 것을 의사로서의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시는 분이지요.
▲양종대 대표원장:환자분들 중엔 잘못된 의료지식을 갖고 있거나 약을 먹지 않고 기도하면 낫는다는 왜곡된 신앙관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분들을 설득시키는 게 어렵습니다. 궤양환자가 금식기도를 한다던지, 암 환자가 항암치료를 하지 않는다던지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데 잘 설득해 최선을 다해 의학적인 치료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경 말씀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래서 양내과 원장 시절 퇴근 후 저녁때마다 학교에 가서 신학 공부를 하기 위해 침례신학대학원을 가게 된 건데요. 학교가 목동에 있을 때는 다니기가 수월했지만 학교가 북유성대로로 이사 가면서 시간상 어려움을 많이 겪었네요. 저는 대흥침례교회에서 안수집사를 하면서 협동전도사로 일하고, 의료선교위원회 위원장을 하면서 해외봉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국내에서도 시골 낙도 섬에 가서 진료활동을 많이 했는데요. 신앙이 바로 서 있으면 사람들의 행위나 판단에 휘둘리지 않고 갈등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그럴까' 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되죠. 인간에 대한 혐오가 연민으로 바뀌게 되면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임을 깨닫게 되면 사람을 사랑하게 되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받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도구로 쓰시는 거죠. 우리가 추악한 쓰레기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밝고 곧은 신앙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하십니다.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기 시작하게 되면 사랑하게 되죠.
양종대 대표원장 |
▲양종대 대표원장:'공수래 공수거'라는 말에 대해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소유 개념에서 나온 말인데요. 결혼해서 아이도 키우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사회에 많이 베풀고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삶, 활력, 행복을 주고 가야지요. 또 한가지,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무리하게 욕심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살다가 가는 게 이름을 남기고 가는 것보다 삶에서 더 중요하고 행복한 요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유의 개념으로 욕심을 부리면 아웅다웅하게 됩니다. 삶의 목표를 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세우기보다 하나님의 도구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삶을 추구합니다. 저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고, 뛰어난 것도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 속에서 서로 서로 행복해하며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양성우 원장:인생의 가이드 역할을 해주시는 아버님의 부르심으로 대전에 다시 돌아와 기쁩니다. 굉장히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시간이었는데 드디어 대전 집에 오니 너무나 좋습니다. 제 고향 중구에 와서 아버님을 도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생활이 참 만족스럽습니다. 제가 오류초와 중앙중, 충남고를 나왔으니 중구는 제 홈그라운드지요. 대전에 돌아온 뒤 참으로 마음이 편안합니다. 어렸을 때 아버님과 길을 걷다보면 아버님께 인사하시는 동네 분들이 너무 많아 길을 걷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는데요. 인술을 베푸시면서 환자들을 사랑하시는 아버님의 뒤를 이어 저도 그런 가슴 따뜻한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이지만 이렇게 아버님과 함께 중도일보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기쁜 일도 생겨서 참 좋습니다. 좋은 글 많이 많이 쓰면서 아버님처럼 환자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양종대 대표원장 |
▲1949년 서천 출생. 대전고등학교 졸업(47기), 충남대학교 문리과 대학 의예과 수료,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의학과 의학사(3기), 조선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의학 석사, 조선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의학박사, 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학 석사.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인턴과정 수료,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내과 레지던트(내과전문의),대전 을지대학병원 내과 과장, 대전 양내과의원장, 충남의대 대전시 의사회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총동창회장, 대한내과개원의협의회 대전충남지회 회장, 대한의사협회 중앙대의원, 충남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대전고등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대전극동방송 운영위원,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발전후원회장, 대전기독의료인연합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병원 발전후원회 감사, 대전시 의사회 감사, 을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코스모내과 대표 원장으로 활동 중. 보건복지부장관상, 대전지방검찰청 검사장상, 대전시장상 등 수상.
양성우 원장 |
▲1979년 대전 출생. 충남고(36기)와 외국어대 경영학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분당제생병원 전공의 수련.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을지대학교병원, 분당제생병원을 거쳐 현재 대전 코스모내과 내분비내과 원장으로 재직 중.
2019년 월간 시사문단에 수필로 등단. 제18회 한미수필문학상 수상.
한국시사문단작가협회와 빈여백 동인으로 활동 중. 저서로 <당신의 아픔이 낫길 바랍니다> 등이 있음.
브런치(https://brunch.co.kr/magazine/wubenign)와 유튜브(닥터 와이), SBS 인-잇에 의학정보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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