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이슈현장]대전 골령골 예술꽃 피우다…소설·시·뮤지컬·다큐 승화

27일 학살현장에서 제1회 평화예술제 개최
지역 문화예술인 북·서예·시·노래로 위로해
소설부터 뮤지컬, 전시예술까지 다양화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2-06-30 16:58

신문게재 2022-07-01 10면

전시회 물꽃이 일렁이는 밤
미술작가 이정성 씨의 '물꽃이 일렁이는 밤'의 전시회에서 골령골 흙에 메밀꽃을 피우는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제공)
한국전쟁 그중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상처를 지닌 대전에서 이를 예술로 표현하는 활동이 짙어지고 있다. 대전형무소에서 골령골까지 끌려와 군과 경찰의 총 끝에 희생된 양민을 위로하는 시를 짓거나 소설을 쓰고 뼈와 살이 녹아든 흙을 받아다 꽃을 피우는 행위예술까지 발전하고 있다. 비극을 예술로 위로하는 현장을 가본다. <편집자 주>

▲학살지에 핀 평화예술제=지난 6월 27일 대전 동구 산내의 골령골에 작은 무대가 마련됐다. 관람석 격의 의자 30여석 앞에 작은 공간을 마련했을 뿐 특별한 시설물은 없었으나, 골령골이 갖는 상징성때문에 독특한 느낌을 자아냈다. 흙바닥의 작은 무대에서 이날 한기복 전통타악그룹 굿 대표의 대북 공연을 시작으로 송인도 서예가의 서예 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문화발전소와 마당극단 좋다, 작은극장 다함이 준비한 단심줄 감기는 이날 제1회 평화골령제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볼거리였다. 중심에 단심봉을 세우고 10개의 천을 서로 엇갈리게 엮었다가 풀어내는 과정에서 켜켜이 쌓인 원한이 풀어지기 바라는 마음이 읽혔다. 김희정 시인은 최근 발생한 시집 '서사시 골령골' 중에 '골령골 마흔아홉 번째'를 낭송했다. 대전에 뿌리를 둔 밴드 프리버드와 대전청년회 노래모임 놀은 기타를 치거나 화음을 모아 골령골에 위로의 목소리를 전했다. 마당극패 우금치는 탈을 쓰고 몸짓과 육성으로 희생자를 의로하고 남은 유족들을 달랬다. 한국전쟁 시기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예비검속자 최소 1800여명이 끌려와 우리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된 현장에서 여러 예술인들이 모여 공연을 통해 넋을 위로한 평화예술제는 올해 처음 개최된 것이다.

밴드 프리버드1
6월 27일 대전 골령골에서 개최된 제1회 평화예술제에서 밴드 프리버드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이날 골령골 평화예술제를 주관한 (사)대전민예총 이찬현 이사장은 "골령골을 비롯해 옛 대전형무소 우물터 등 이념을 떠나서 치유되지 않은 상처가 깊고 예술인이 이를 보듬어보고자 기획했다"라며 "'인간이 어떻게 인간에게'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해 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해 이날 답을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이 지은 시 노래되어=대전 골령골의 상처를 처음 위로한 문학은 유족들이 잃은 가족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였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례에 걸쳐 대전형무소에 수감 중이던 재소자와 예비검속자가 우리군과 경찰에 의해 학살됐고, 50년 이상 숨죽인 유족은 시로서 울분을 삼켰다. 골령골에서 오빠를 잃은 신순란 시인은 2005년 시집 '눈물의 1949'에서 '눈물의 술잔'을 통해 노래했다.

'골령골 피로 물들 때/ 어머니가 올리신 정안수도 / 피 눈물로 넘쳤도다 / 부모님 눈가에 맺힌 눈물은 가뭄도 없는데 / 흐르는 빗줄기처럼 / 그칠 줄 몰랐다네 / 달 그림자에/ 고향그리며/ 부모 형제 불렀으련만 /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에 / 까막까치들만이 날아 들 뿐이네 /

소설 랑월
박현주 작가가 발간한 산내 학살사건의 시대를 담은 소설 '랑월'.
유족 신순란 씨의 시는 그의 손녀인 가수 설가령씨가 곡을 붙여 '자식 잃은 어머니의 눈물' 노래가 되었다. 조수연 작사 정진채 작곡의 '골령골 산허리'도 72년 전 상처를 위로하는 노래로 대중에게 선택을 받고 있다. 중도일보 칼럼리스트로 활동한 김희정 시인은 49편의 연작시를 묶은 '서사시 골령골'을 최근 발행했다. 저세상으로 가지 못한 망자의 영혼이 구천을 떠도는 기간을 의미하는 '49일'을 차용해 총 49편의 시를 수록했다.

▲소설과 뮤지컬 속에도 '골령골'=최근에는 소설과 연극, 뮤지컬에 다큐멘터까지 골령골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진실을 촉구하는 장르가 다양해졌다. 박현주 작가의 '랑월'은 골령골을 그린 본격 소설이다. 대전형무소를 건설하는 일제시대의 대전에서 독립국가와 민주정부를 세우고자 열망했던 양민들의 삶을 묘사하고 골령골에서 억울하게 스러진 민족의 한을 기록에 기반한 작가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박현주 작가는 골령골을 주제로 하는 문화예술이 활발해지는 것에 대해 진실이 일부라도 드러나는 과정에서 예술적 메타포가 빛을 발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박현주 작가는 "여전히 진실규명의 과제가 남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이 많지만, 언론보도나 다큐, 논문 등 사실 기록 위에 음악, 미술, 문학, 연극 등 예술작품이 꽃피우는 일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며 "저 역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글짓기를 택해서 이 사건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리고 진실을 전하고자 소설화했다"고 설명했다.

▲유해발굴 참여 예술로 승화=뮤지컬극단 '어썸씨어터'의 뮤지컬 '골령(김요섭 연출)'은 지난해 12월 무대에 올려기지 전, 연출가와 출연진들이 2주일간 유해발굴 자원봉사를 했다. 이때 느낀 감정을 연극에 담아 국가폭력 현장인 유해발굴 사실을 취재하겠다는 후배기자와 이를 말리는 선임 기자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었다.

뮤지컬 극단 어썸씨어터 '골령'
뮤지컬 극단 어썸씨어터가 뮤지컬 '골령'을 공연하고 있다.  (사진=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제공)
미술작가 이정성 씨는 유해발굴 경험을 토대로 '물꽃이 일렁이는 밤'의 전시회를 열었다. 유해발굴 자원봉사하며 흙을 파고 유골을 옮기는 과정을 지켜본 그는 골령골 현장의 흙을 받아다 메밀꽃을 피우는 과정을 전시하고 골령골 현장음을 전시공간에 들려줌으로써 생명이 되는 과정으로 재탄생시켰다. 소설가이자 대전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류이경 작가 역시 2015년 자원봉사 후 단편 시를 내었으나, 짧은 시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단편소설 '붉은 나무의 언어'를 한국소설 2021년 9월호에 게재했다. 골령골을 향해 학습을 겸한 다크투어리즘 차원의 접근도 이뤄지고 있다. 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가 주축으로 평화로드씨어터 '달맞이꽃'이라는 참여형 프로그램이 운영됐는데 참가자들이 헤드폰을 쓰고 배우들과 함께 옛 충남도청과 대전형무소 터, 산내 골령골을 찾아다니며 관람객이자 대상이 되는 경험을 나눴다. 이보다 앞서 임재근 작가의 사진전 '콘크리트의 기억'에서는 옛 대전형무소 감시탑의 녹슨 풍경이나 골령골 위령비를 누군가 해코지해 남은 상처 등의 사진을 전시했다. 사실에 바탕을 둔 다큐멘터리도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2018년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 골령골 이야기(정진호 연출)'가 세상에 공개됐고, 대전KBS 특별기획 '골령골 묻혀버린 진실(임청조 연출)'은 대전형무소로 걸려온 전화에서 시작해 희생된 역사를 2부작으로 재현했다. 대전MBC는 지난 6월 25일 한국전쟁 72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나는 喪中(상중)이오(기획 이상욱, 연출 최영규)'를 방영했다.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을 주제로 11명의 작가의 작품을 모아 대전 옛 충남도청에서 전시회 중인 박진우 (사)제주4·3범국민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숨겨진 진실을 밝힐 때 문화와 결합하는 것은 치유의 과정으로 중요한 과정"이라며 "시대의 고통을 담아내는 방식으로 사실의 기록만큼 예술의 표현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탈극
6월 27일 대전 골령골에서 개최된 제1회 평화예술제에서 마당극패 우금치가 탈극을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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