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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유산의 과거와 미래 ‘디지털헤리티지’로 잇다

'디지털헤리티지 전문가' 김지교 문화유산기술연구소 대표
18년간 문화유산 기록·보존, 국내외 문화재 모션·3D스캔 등
디지털라이징 후 실감콘텐츠 개발 외형 넘어 무형가치 조명

한세화 기자

한세화 기자

  • 승인 2022-07-28 16:18
  • 수정 2022-07-28 16:22

신문게재 2022-07-29 9면

대전 중구 오류동 하나은행 맞은편에 나지막하게 서 있는 '문화유산기술연구소'는 "뭘 하는 곳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범상치 않은 외관 분위기를 품고 있다. 통유리 출입문 안으로 보이는 1층 원형 공간에는 사람 크기만 한 호랑이 인형이 앉아있고, 벽면을 꽉 채운 둥그런 책장에는 각종 전문서적으로 빼곡하다.

들어본 듯하지만, 왠지 생소한 단어 '디지털헤리티지' 분야만 18년째 파고드는 김지교(40) 문화유산기술연구소 대표는 문화유산의 형체 복원을 넘어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는 진정한 디지털헤리티지 전문가다.

디지털 공간에 기록·보존한 문화유산을 분석하고 복원·연구·전시·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제작하는 문화유산기술연구소는 4차 산업혁명의 흐름에서 없어서는 안 될 디지털헤리티지 분야의 중심에 서 있다. 지난달 21일 만난 김 대표를 통해 문화유산과 디지털 콘텐츠의 방향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건물전경
문화기술연구소 건물 전경.
▲디지털헤리티지 전문기업 '문화유산기술연구소'
정보와 기록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지금, 사라져가는 기록들을 관리하고 보존해 후손에게 어떠한 형태로 남겨줄 것인가는 인류의 영원한 과제다.

'문화유산기술연구소(TRIC)'는 문화유산에 대한 디지털 아카이빙을 비롯해 보존과 복원, 활용 콘텐츠 개발에서 메타버스까지 문화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디지털 헤리티지 전문기업이다. '디지털헤리티지'는 문화유산이나 자연·무형유산 등을 3D스캔, 기가픽셀 이미징 볼륨메트릭, 모션캡쳐, RTI 등의 다양한 디지털라이징 기법을 통해 디지털트윈 데이터로 변환하는 것을 말한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유실되고 훼손돼 더는 온전히 이해되지 않는 옛 선인들의 뜻을 '첨단기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번역하고 현대인과 미래세대에 전달한다.

'얼을 복원한다(Restore the spirit)'라는 슬로건으로 문화유산이 지닌 유형의 가치뿐만 아니라 무형의 의미까지 되살리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가상(VR), 증강(AR), 확장현실(XR), 인터랙티브(상호작용), 홀로그램, 프로젝션맵핑(미디어파사드) 등 다양한 실감형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결과물들은 전시·교육·방송·관광 등 여러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2009년부터 국내·외 문화유산 관련 기관들과 함께 주요 문화유산들을 대상으로 보존·복제를 위한 디지털 원형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4차 산업혁명시대 문화유산 기술융합 분야의 독보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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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기술연구소 1층 '사유의공간' 모습.
▲93대전엑스포 키즈, 무형의 가치 담아내는 '디지털헤리티지 전문가'로 성장
1983년생인 김지교 문화유산기술연구소 대표는 초등 무렵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근무지인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1993년 대전엑스포를 관람하면서 받은 감동과 문화적 경험이 지금의 김 대표로 이끌었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만화를 좋아했다는 김 대표는 당시 전국에서 유일하게 개설된 공주대 문화재보존학과를 졸업한 후 고고학과 역사학, 인공지능, 학예, 미디어, 건축 등 디지털을 접목한 문화유산 보존·복원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2005년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중도일보가 남북공동으로 기획한 '고구려대탐험전' 프로젝트 참가 계기로 작용해 지금의 연구소를 설립하는 데 마중물이 됐다. 이후 사업체를 법인으로 전환한 2013년 즈음, 실감콘텐츠를 비롯한 문화유산의 디지털 복원 필요성이 국가적인 정책으로 부상하면서 사업 규모가 빠르게 성장한 데 이어, 2016년 데이터구축 업체와 합병하면서 성장에 가속을 더했다.

2020년에 현재 사옥으로 이전해 '사유의 공간'을 중심으로 로비, 수장고, 카페로 구성한 1층과 제작·기획·편집실이 있는 2층, 대표실과 재무실, 연구실, 촬영실, 실내정원이 있는 3층과 지하층에 옥상까지 아담하지만 작지 않은 이곳에서 세계적인 문화유산 디지털 복원이 탄생하고 있다. 회의실은 층마다 배치돼 있으며, 옥상은 직원들의 창의적인 발상을 위해 '루프탑 라운지'로 꾸몄다.

합병으로 인한 사세 확장은 매출 신장으로 이어졌다. 연평균 40억 원의 매출을 기록, 국비 지원 공모사업과 R&D 비용 등을 포함하면 60억 원(추정)이며, 연 매출 200억 원의 제조업 규모와 맞먹는 수치다.

대한민국의 중심에 위치한 대전의 지리적 이점이 다른 지역 간 이동에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한 점이 문화유산기술연구소가 대전에 정착한 가장 큰 이유다. 20여 명의 직원 역시 상당수가 대전이나 지역 연고 전문가들로 포진해 있는 등 대전을 '과학과 접목한 세계적인 디지털헤리티지 도시'로 만들겠다는 게 김지교 대표의 포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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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2층 콘텐츠개발실과 문화재스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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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콘텐츠개발팀 회의 모습과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 3D 스캔 모습.

▲국내 '디지털헤리티지' 세계화를 향해
문화유산기술연구소는 문화재청을 비롯해 충남도청, 국립중앙박물관, 부여국립박물관, 공주시, 서산시, 당진시, 청주시 등 다양한 관공서와 국가기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국립고궁박물관과 국가기록원, 국립문화재연구소, 육군박물관, ETRI, 봉녕사, 송광사, 천안박물관, 동북아역사재단 등 수많은 클라이언트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세계적으로 다양한 문화유산 관련 기관과의 교류를 통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디지털기술로 보존·복원한다.

2019년 문화재유공표창과 국립문화재연구소 감사패를 받는 등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디지털 보존·복원에 형체를 넘어 무형의 의미와 가치에 집중하고 있다.

 

2019년 11월 5일부터 이듬해인 2020년 1월 27일까지 선보였던 대전시립미술관 몰입형 아트 '어떻게 볼것인가'에서 국보 24호이자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석굴암'을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로 구현해 불상의 표면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는 등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일으켰다.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대표는 "문화유산 콘텐츠에서 실수는 공급자 위주의 콘텐츠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며, 문화유산 자체에 매료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에게 석굴암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관람객들이 오감을 통해 실감하고 스스로 깨닫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2020년 8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작품들에 대한 기가픽셀 아카이브 DB를 구축하고, 이를 사용자들이 테마와 카테고리에 따라 자유롭게 열람해볼 인터랙티브 미디어월 개발에도 참여했다. 관람객들이 셀피를 촬영하면 소장품 작가의 화풍으로 다시 그리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AI 기반 아트페인팅 키오스크와 증강현실 기반 모바일 도슨트 어플리케이션 개발·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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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인천공항 미디어타워, 인천공항에 설치한 아파트10층 높이의 미디어아트.
문화유산기술연구소는 지역은 물론 전국,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글로벌 기업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인천공항 T1 국보 반가사유상 초대형 실감콘텐츠(2022), 아나몰픽 미디어아트 광화연대기 5G 실감콘텐츠 사업 '광화벽화'(2021), KBS '불(佛)의군주' 백제사찰 왕흥사 디지털복원(2021), 국립경주박물관 성덕대왕신종 소리체험관 실감형 콘텐츠(2020), 문화재청 석굴암 VR(2018), 공산성 초대형 프로젝션맵핑(미디어파사드, 2016~17), UNESCO 세계유산 '아프라시압 프로젝트'(2014·2018),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석굴암 UHD 디지털복원 영상(2013),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20주년 기념 디지털복원 UHD 영상(2013), 백제인의 얼굴 복원 프로젝트(2012) 외 다수의 디지털헤리티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최근에는 180억 원 규모로 경주 엑스포대공원에 조성되는 신라 헤리티지 실감공간 '계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미국과 프랑스의 경쟁 기업들을 넘어 국내에서 세계 최고의 디지털헤리티지 전문기업이 목표인 김지교 문화유산기술연구소 대표는 대전이 추구하는 과학도시 정체성을 디지털헤리티지와 접목해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음에도 시의 소극적인 행보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대표는 "대전시가 지향하는 스타트업 육성 방향이나 시에서 브랜딩하고자 하는 과학기술+문화예술 주제와 디지털헤리티지가 상당 부분 맞아들어간다"며 "다른 지자체에서 본사 이전이나 지사 설립 등 러브콜을 보내는 것과 달리, 대전시는 창고에 옥구슬이 가득 채워져 있듯이 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한데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인터뷰 끝에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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