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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살풀이, 맺힌 한을 풀고자하는 바람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73. 살풀이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16-06-18 08:21
‘그때 그 코너’를 기억하십니까?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는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본보의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 독자들을 위해 서비스됐었습니다. 무심코 사용하는 우리말 속에 담긴 유래와 의미를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가 출간한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게재됐었습니다.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으로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추억의 코너를 되살려보기 위해 ‘송교수의 재미있는 우리말 이야기’ 시즌 2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변함없는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 주>

▲ 사진=연합 DB
▲ 사진=연합 DB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독하고 모진 귀신의 독기 즉 악한 귀신의 짓을 우리는 살煞이라고 한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대수롭지 않게 건드려서 상하거나 깨졌을 경우에 흔히 악귀의 침범이 있다고 여기고, 악한 귀신의 짓이 들어붙는 것을 ‘살 오르다’라고 하며, 그것이 떨어져 가는 것을 ‘살이 내리다’라고 한다. 그리고 초상집이나 혼인집 또는 제사 집에 갔다가 탈이 났을 때는 ‘살을 맞다.’라고 한다.

또한 유별나게 흉사가 잦거나 액운이 겹칠 때 그러한 현상을 ‘살煞이 끼었다’고 한다. 이렇듯 좋지 않은 기나 기운을 느끼고 있거나 그 같은 원인으로 말미암아 하는 일마다 막히고 풀리지 않을 때, 친구 사이에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리거나, 부부 사이가 어느 날 갑자기 악화되었을 때, 좋지 않은 살이 끼었기 때문이라고 여기는 것 등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만사가 다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나오는 것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처럼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엉뚱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살’이라는 용어는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보다 흉사의 내용을 함축하는 특정한 어휘를 그 앞에다 놓는 이른바 두 개의 어휘를 결합하는 조합의 형태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역마살, 망신살, 도화살, 낙마살… 등등의 예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 중 역마살은 한 곳에 오래도록 머물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이동수移動數가 많은 팔자를 타고남을 뜻하는 말이고, 망신살亡身煞은 행동이나 언어 등으로 몸을 망치거나, 망신을 당할 운수에 해당하는 말이며, 도화살桃花煞은 잘못되고 과도한 음욕으로 재앙을 불러오는 경우에 쓰는 말, 그리고 낙마살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나쁜 일이 갑자기 일어나 고통스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쓰는 말 등을 각각 뜻한다.

이처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혹은 살아가는 동안 대인관계에서 살이 끼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것에 상응하는 처방을 해야 한다. 그 처방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행위를 살풀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우리네 조상들은 ‘한풀이’, ‘원풀이’, ‘성주풀이’에서 보는 것처럼 맺힌 것을 푸는 무술적 행위를 풀이라고 하였다. 이때 무당이 간단하게 음식을 차려 놓고 악귀를 풀어먹이는 행위를 ‘푸닥거리를 한다’라고 한다.

이 살풀이도 역시 ‘살’이 맺힌 것을 푸는 무속적 행위이기 때문에 살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살풀이의 행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살풀이를 하는 행위는 적어도 신을 모시는 사람이나 신 내림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영역이기 때문이다. 즉 과거 우리 조상들은 어떤 사람에게 나쁜 액운이 들어와 있다고 할 때 그것을 밖으로 내몰거나 그것을 풀어주는 주술적 행위는 신을 모시는 사람이거나 신 내림을 받은 무속인만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너무나 풀지 못하고 응어리진 ‘살’이 도처에 산재해 있다. 이른바 ‘연정살’, ‘지역감정살’, ‘과거사규명살’ 등 수없이 많은 ‘살’이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이 ‘살’을 시원하게 풀어줄 무속인은 없단 말인가?

/송백헌 충남대 국문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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