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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사자성어] 60. 익자삼조(益子三造)

든든한 자녀가 있다면

홍경석

홍경석

  • 승인 2016-08-04 01:00
▲ 게티 이미지 뱅크
▲ 게티 이미지 뱅크


부실해진 오른쪽 어깨가 도통 낫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 병원을 찾는데 힘든 일을 조금만 해도 금방 표가 난다. 회사에서 소방훈련이 있어 무리했더니 더 아파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제도 다시금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았다.

병원을 나와선 지척의 마트에 들어갔다. 그 집은 아들과 대학 동기의 어머니가 주인이다. 아들이 대학을 마칠 때 찾은 졸업식장에서 처음 뵈었는데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말씀도 잘 하셔서 금세 ‘친구’가 되었다.

더욱이 나와 나이도 같은 베이비부머라고 해서 더욱 친밀감을 느끼는 터다. 냉장고에서 음료를 두 병 꺼내 하나를 드렸으나 극구 사양하셨다. “차도는 좀 있으세요?” “늙어서 갈 때가 되었는지 당최 안 낫네요. 그나저나 아드님도 결혼해야잖아요?”

그 말에 의자를 돌려 앉은 주인아주머니의 표정이 자못 ‘진지 모드’로 바뀌었다. 대저 우리 같은 ‘꼰대들’은 자식에 대한 얘기가 시작되면 기다렸다는 듯 그에 대한 화두로 이야기꽃을 피우게 마련이다.

먼저, 아들이 재직 중인 대기업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과장으로 승진했단다. “어이구,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단다. 회사에선 5년 일정으로 미국지사로 인사발령을 낼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잘 됐네요. 그럼 아드님 덕분에 미국 구경도 하실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게 그렇지 않아요. 아들은 아직 미혼인지라 회사에서 미국으로의 발령을 강권할 경우 심지어는 퇴직까지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에그~ 오나가나 미혼인 아들이 문제로군요.” 동병상련에 그렇게 거들었으나 그 아주머니의 표정은 정말 심각해 보였다. 아들만 둘이라는 그 아주머니와 달리 나는 1남1녀를 두었다. 또한 그 두 아들이 다 미혼인 반면 딸은 지난봄에 소위 ‘품절녀’가 되었다.

따라서 내년이라도 아들이 결혼한다며 며느릿감을 데리고 온다면 그 어떤 것조차 묻지도 따지지도 않을 작정이다. 어제 찾은 마트 아줌마의 아드님이나 내 아들, 또한 사위 역시 회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단)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직장인들도 다름의 세 부류로 나뉜다는 게 개인적 믿음이다. 첫째,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 있다. 다음으론 있으나마나 한 사람이다. 끝으론 필요 없는 사람이 실재한다.

비단 직장이 아니라 주변을 유심히 살펴보더라도 이런 주장엔 타당한 설득력의 무게가 실린다고 본다. 이를 더욱 확산시키자면 익자삼우(益者三友)까지 동원돼야 한다.

‘자신을 이롭게 하는 세 친구’라는 뜻을 지닌 이 사자성어는 서로 사귀어 이롭고 보탬이 되는 친구로는, 정직하고 믿음이 있으며 지식까지 겸비한 친구라야 가능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반면 사귀어봤자 해로운 친구, 즉 손자삼우(損者三友)도 있다.

편벽한 사람과 줏대가 없는 사람, 그리고 말만 잘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그 대상이다. ‘익자삼우’에 편승하여 나름 만들어본 신판 사자성어로 익자삼조(益子三造)를 거론코자 한다. 이는 이익(利益)이 되는 아들, 즉 효자(孝子)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만들(造) 줄 알아야한다는 주장이다.

우선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손 치더라도 결혼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들(딸)이 결혼을 않고 언제까지나 부모 곁에서 머물기만 한다면 이 또한 불효라는 게 고루한 나의 사상이다. 또한 결혼 후엔 당연히 아들이든 딸이든 자녀를 낳아야 한다.

이건 궁극적으론 저출산에 신음하는 대한민국의 국력에도 보탬이 되는 일종의 애국이다. 시류마저 변하여 독신을 고집하며 심지어 ‘화려한 싱글’ 어쩌고 하는 사람도 없지 않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류가 더욱 심화되고 세월마저 성큼 더 지난 후에 다들 그런 증후군에 휩싸인다면 생각만으로도 충분이 끔찍하다. 천상병 시인은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저승에)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했다.

여기서도 볼 수 있듯 우리네 삶은 어차피 영원불멸이 아닌 일시적 ‘소풍’일 따름이다. 웰빙도 좋지만 웰다잉(well-dying)을 더욱 중시하는 즈음이다. 이 세상에서의 소풍을 마치고 떠나는 날 가족들의 배웅을 받는 마지막이 나을까, 아님 혈혈단신 나그네처럼 떠나는 게 나을까?

‘익자삼조’의 마지막으론 부모가 자신에게 해준 것의 다만 10분의 1이라도 행동으로 보이라는 것이다.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보면 어머니가 아이를 낳을 때는 3말 8되의 응혈(凝血)을 흘리고 8섬 4말의 혈유(血乳)를 먹인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부모의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 업고, 어머니는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須彌山)을 백 천 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진부하게 이렇게까지 하는 사람은 물론 당연히 없다. 다만 부모는 하루가 다르게 늙고 병들어 간다는 사실이다. 고로 더 나이를 먹어 거동조차 부자연스럽기 전에 맛난 거 사드리고 멋진 곳으로 같이 여행을 하는 것을 마다치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처럼 든든한 자녀가 있다면 그 가정이 어찌 행복하고 또한 웃음꽃이 만발치 않으리. 또한 효심이 튼튼한 배라야만이 중간에 풍랑을 만나더라도 좌초하지 않고 순항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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