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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는 삶의 축] 38. 머나먼 고향

어떤 명절 잔혹사

홍경석

홍경석

  • 승인 2017-01-31 00:03


“머나먼 남쪽 하늘아래 그리운 고향 ~ 사랑하는 부모형제 이 몸을 기다려 ~ 천리 타향 낯선거리 헤매는 발길 ~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 마음은 고향 하늘을 달려 갑니다 ~”

나훈아의 히트송 <머나먼 고향>이다. 아들을 낳은 지 얼마 안 된 지난 30여 년 전 당시 근무했던 천안의 직장에서 인천으로 발령이 났다. 그래서 아내는 아들을 업고 나와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해가 바뀌어 설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홀아버지가 사시는 천안과 아산의 숙부님께도 세배를 드리자면 천안행 고속버스에 반드시 올라야 했다. 콩나물시루와도 같은 인천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몇 시간이나 기다렸다가 겨우 차표를 구입할 수 있었다. 그것도 좌석이 아닌 입석으로.

명절답게 고속도로는 귀성길 차량들로 정체와 지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따라서 아들을 업은 아내는 더욱 죽을 맛이었다. 때문에 <머나먼 고향>의 노래 ‘머나먼 남쪽 하늘아래 그리운 고향’의 노래가 더욱 멀게 느껴졌음은 물론이다.

자그마치 일곱 시간이나 지나서야 겨우 천안의 초입에 들어설 수 있었다. 천안에서 하차한 아내의 몸에선 겨울답지 않게 진땀이 수북했다. 아들 역시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져서 부끄러웠다.

“미안해! 내가 남들처럼 차가 있었더라면 당신과 우리 아들이 이처럼 고생을 안 했으련만…….” 그렇게 설날 명절 ‘잔혹사’를 기록했던 인천에서의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직장의 상사가 거액의 내 돈을 떼먹고 잠적한 때문이었다.

그로부터는 인천이 본격적인 ‘천리 타향 낯선 거리’로 바뀌면서 만취하여 ‘헤매는 발길’의 연속이었다. 아울러 ‘한 잔 술에 설움을 타서 마셔도’ 마음은 늘 그렇게 고향 하늘을 달려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좌절과 자학의 나날을 점철하던 중, 하루는 대전지사의 지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러자 직장 상사가 ‘잠수’한 걸 인지하고 있던 지사장님께선 대전으로 근무지 변경을 허락해 주셨다. 덕분에 이사를 마친 이듬해엔 전국 최연소 사업소장으로의 승진까지 이뤄냈다.

고로 이쯤 되면 꿩 대신 닭이 아니라 ‘닭 대신 꿩’인 셈의 귀결이었다. 세월은 여류하여 그때의 설날에 아내와 함께 그야말로 개고생을 했던 아들은 늠름하기 짝이 없는 30대 청년이 되었다. 승용차도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집으로 달려온다.


‘조용헌의 명문가’라는 책을 보면 충남 논산의 명재 윤증(尹拯) 고택(古宅)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여기서 명재(明齋)는 그의 호(號)이다. 윤증의 고택과 그 인근은 동학이나 6.25때도 피해가 전무했다고 한다.

이러한 까닭은 명재와 그의 후손들이 평시에는 교육에 힘썼고 어려운 시기엔 구휼 사업을 적극적으로 펼쳐 양민을 도운 음덕(陰德)이라고 했다. 이 얘길 굳이 꺼낸 이유는 ‘머나먼 고향’의 힘든 귀향길에 그러나 묵묵히 올라야만 했던 착한 아내 덕분에 아들과 딸이 모두 잘 풀렸기 때문이다.

고향이 멀면 설날과 추석 등의 명절에도 오가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고향에 안갈 순 없는 노릇이다. 고향은 영원한 노스탤지어이자 힐링의 구심점인 까닭이다. 설을 보내고 났기에 하는 말이 아님은 물론이다.

홍경석 / <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월간 오늘의 한국> 대전·충청 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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