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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걷는 세상

유낙준 주교(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유낙준 주교(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 승인 2017-08-20 11:26

신문게재 2017-08-21 19면

▲ 유낙준 주교(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 유낙준 주교(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길을 걸을 때 어깨가 툭 치이면 기분이 상하게 됩니다. 더구나 어깨를 치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은 길에서 어깨를 치이면 더욱 낭패감을 갖게 됩니다. 가만히 제 모습을 들여다보니까 저도 늘 그렇게 남의 어깨를 치면서 바삐 걸었습니다. 타인이 보이지 않고 자신에만 빠져 살 때 내 어깨로 타인의 어깨를 치면서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내 길을 가자고 타인의 어깨를 치는 것은 당연히 죄송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내 어깨에 치인 타인에게 죄송한 마음 없이 내 자신에게만 빠져 당연히 앞만 향해서 걸었던 제 모습이었습니다. 나로 인해 생긴 남의 아픔이 전혀 제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산 어리석은 삶이 보인 것입니다.

내 이익을 얻기 위해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이 나의 걸음걸이에서 발견되었기에 참으로 홀로 부끄러웠습니다. 내 어깨에 치인 타인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와 고개숙임 없이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밖에 모르는 교만한 삶이라는 깨달음이 내면으로부터 깊이들었기에 그 이후부터는 내 어깨로 타인의 어깨를 치면서 걷지 않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깊이 보는 성찰로 인하여 자신을 부끄러움과 수치라는 삶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책을 많이 보았는데도 훌륭하게 살지 못하고, 어른이 되었는데도 감정적 미숙아로 살지라도, 경제가 여유로워졌는데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준비가 여전히 안 된 모습일지라도 인간은 성찰을 통하여 스스로를 보고 자신을 지키면서 살고자 합니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데에는 두 가지의 길이 있습니다. 첫째, 홀로 내면의 가슴이 주는 빛을 받아 스스로 깨우치는 성찰의 길이고, 둘째, 자기 바깥의 외부자의 도움에서 빛을 얻는 배움의 길입니다. 배움과 성찰의 이 두 가지 길은 매우 종교적이면서도 사회적인데, 이 두 가지의 거대한 양극단 사이를 오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입니다. 이 배움과 성찰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고 늘 붙어 다니기에 인간에게 자신을 지키고 타인에게 관용을 주는 균형의 삶을 제시해 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내 자신이 한 사람에게 가슴이 열린 이후부터는 누구나 내 마음에 들어오게 됨과 같은 것입니다. 스스로를 잘 지키며 살면 타인이 내 안에 들어오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나와 타인이 분리된 파편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사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것이 가슴이 파괴되지 않고 가슴이 주는 열정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균형된 삶입니다. 균형적 삶이 부서지면 인색한 이로 혼자만 남게 되는 삶이 되거나 무력하게 살아 주눅든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잘 지키면 자신이 타인과 연결된 존재로 서 균형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세계화의 덫에 걸려들었고 우리가 스스로 그 덫을 놓는 주체가 된지 오래입니다. 세계화 경제정책은 항상 소수가 이익을 얻고 대다수가 손해를 보는 그림이었습니다. 소수만이 부자가 되었고 다수가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없이 살 때, 사회는 경제적 손익 관계로 파악됩니다. 그러나 인간이 서로가 연결되어 사는 존재임을 인식하며 살 때에는 격려가 넘치게 되어 서로가 힘을 주는 관계가 됩니다. 서로에게 기운을 주고자 하는 세계에서는 혼자서만 이익을 보는 것이 없기에 손해보는 사람도 없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기운을 주는, 부분이 아닌 전부에게 영향을 주는 관용과 평화를 세워 서로 기운을 주는 사회를 바랍니다.

오늘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어깨를 부딪치지 않고 걸었습니다. 나와 타인이 연결된 관계이기에 전쟁의 고통없이 살 수 있는 길이 보였습니다. 양 극단에서 균형을 맞추어 사는 성숙함이 우리 안에 있음을 본 날입니다.

유낙준 주교(대한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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