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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 파바로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오지희(음악평론가, 백석문화대 교수)

오희룡 기자

오희룡 기자

  • 승인 2020-01-15 10:11

신문게재 2020-01-15 22면

오지희 음악평론가
오지희(음악평론가·백석문화대 교수)
파바로티! 이름만 들어도 이내 가슴이 벅차오른다. 단 한번이라도 파바로티가 노래하는 모습을 본 사람은 쩌렁쩌렁 뻗어나가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그 목소리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오페라 속의 주인공으로, 콘서트 무대 위의 테너 가수로 활동했던 파바로티 음악을 듣고 있자면, 하늘이 주신 재능과 빼어난 음악성에 그 누가 찬탄과 존경을 보내지 않을 것인가.

2020년 새해에 맞춰 루치아노 파바로티(L. Pavarotti 1935-2007) 음악과 인생을 찍은 영화가 상영됐다. 이 다큐멘터리는 노래뿐 아니라 20세기 한 시대를 풍미한 성악가의 인간적인 면까지 새롭게 알려줌으로써 비로소 한 쪽 눈이 아닌 두 눈으로 한 예술가를 온전히 바라보게 된다. 더욱이 인간의 온갖 희로애락을 품은 오페라 아리아는 적재적소에 연결돼 어린 시절부터 마지막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파바로티의 행보를 자연스럽게 좇는다.



영상은 파바로티가 부른 주옥같은 아리아를 따라 에피소드가 전개됐다. 예컨대 파바로티와 친구들이 영국에서 공연할 때 다이애나 왕세자비와 찰스 왕세자도 관객으로 참석했다. 그 때 파바로티는 다이애나를 위해 푸치니 오페라 <마농 레스코>에 나오는 '당신은 처음 본 미인'(Donna non vidi mai)' 아리아를 부른다. "난 지금까지 저렇게 아름다운 아가씨를 본 적 없어, 그녀에게 말하리라, 당신을 사랑한다고. 내 영혼은 새로운 삶으로 깨어났노라고..." 아,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며 눈물이 난다. 파바로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찬사를 노래에 담았다. 그 순간 파바로티는 무대 위의 성악가가 아닌 완전히 오페라 속의 사랑에 빠진 남자였다. 이 감동의 순간이 자아내는 아련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남자 주인공이 아름다운 마농을 보고 반해 불렀던 바로 그 여자 주인공이 오페라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치지 않았던가! 고 다이애나의 활짝 웃는 얼굴에서 훗날 닥친 비극이 겹치면서 형언할 수 없는 뭉클함이 물결치듯이 밀려온다. 공연에서 최고의 사랑노래로 찬사를 바쳤던 파바로티와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인간적인 친밀함을 바탕으로 이내 친구가 됐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발걸음을 함께 내딛었다.

그러나 파바로티 영화가 세계적인 테너의 노래와 유명세를 따라가기만 했다면 그리 큰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명성을 이용해 이득을 보는 수많은 여느 상업영화와 파바로티 다큐 영상이 차별화 된 지점은 바로 인간적인 약점까지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유명인일수록 명예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과거 행적이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이 영화는 아버지와 남편으로서 한 가정의 단란한 모습뿐 아니라 여러 여성과 사랑하며 스캔들을 일으켜 세간의 논란의 중심에 선 과정을 모두 보여준다.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모습이 가감 없이 나왔기에 마지막 순간에는 신과 같은 예술가 파바로티를 넘어 진정한 인간 파바로티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다. 가족 간의 불화와 고통 안에서도 언제나 사랑과 인생을 찬미했던 파바로티는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 주인공 내면과 완전히 일치해 가사 하나 하나의 의미를 절절히 드러낼 수 있었다.

이렇듯 파바로티는 인생을 한없이 사랑하고 노래를 통해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 음악가였다. 가장 많은 오페라 아리아를 녹음한 성악가가 어느 날 유명 팝 가수들과 함께 공연 다니며 클래식음악 대중화에 힘썼던 것은 바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의 삶에서 비롯됐다. 아픈 어린이들, 난민과 같이 고통 받는 사람을 위한 재단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함께 눈물 흘렸던 파바로티는 자신의 모든 허물을 인간을 향한 더 큰 사랑으로 덮었다. 두 번 다시 나올 수 없는 목소리로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던 파바로티와 한 시대를 함께 살았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그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현실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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