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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라이프]여론조사의 허실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0-03-23 17:16
4.15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후보자 중 누가 여론의 지지를 더 많이 받고 있느냐에 온 국민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여론조사 전문기관·단체에서는 각종의 조사결과를 공개하고 있지만, 그 결과에 회의를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정부에서는 '허위·왜곡된 여론조사 결과를 유포하는 행위 등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할 것'을 전국 검찰청에 지시했다.' 여론조사 신뢰의 위기', 왜 그럴까?

먼저, 질문의 작성은 적정한가의 문제이다.



질문지는 응답자의 문장이해력과 표현능력에 크게 의존한다. 흡연과 기도를 동시에 할 수 있는가를 두 문항으로 작성하여 질문한 예화가 있다.

문항1은 "담배를 피우면서 기도를 해도 됩니까?"하고 질문했더니, "물론 좋습니다.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해야하는 것이니까요"라고 대답했던 분이, 다음 기회에 "기도하면서 담배를 피워도 됩니까?"하고 물으니, "안됩니다. 기도는 신중하게 해야하는 것이므로 주위를 산만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결국 같은 행동인데도 문항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응답자의 '태도'를 측정하는 경우의 예를 들면, 문항3. '당신은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① 적극 찬성 ② 찬성 ③ 그저그렇다 ④ 반대 ⑤ 적극 반대 중 선택하라고 했을 경우와, 문항4에서는 다섯 개의 선택지는 똑같이 제시하고, 문두만 '당신은 당신의 자녀가 흑인과 결혼하는데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을 경우의 응답의 차가 의미 있게 산출될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둘째로 대답을 들어 볼 응답 대상을 전집에서 골고루 표집하였는가 하는 문제이다.

조사자가 알고 싶은 것은 대상전체의 특성이지만 전집조사가 불가능하여, 실제로 조사할 적당수의 표본을 선정하는데 이 표본이 전집을 잘 대표할 수 있어야, 표본조사에서 얻은 결과를 가지고 전집의 특성을 추정할 수 있다.

표집의 타당성을 미국 대통령 선거전 여론조사 결과로 알아보자. 1936년 전화번호부와 자동차 소유자 명부에서 무선표집한 약 2백만 명의 유권자들이 응답한 결과를 토대로, 랜든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고 예측하였으나 실제로는 이러한 예측을 뒤엎고 루즈벨트가 압승을 하였다.

예측이 실패한 주요 원인은 편파적 표집 때문이다. 이때 미국은 아직도 대공황의 어려운 시절이었으므로 전화나 자동차 소유자는 대개 부유층이었다. 따라서 다수의 가난한 사람이 제외된 전화·자동차 소유자 중에서 아무리 많은 수를 뽑았다 하더라도 전체 유권자를 대표할 수 있는 표집이 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또 이 조사에서 1천만 명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약 2백만 명분만 회수되어 통계처리를 하였다. 이처럼 응답의 회수율이 극히 저조했다는 사실도 결과의 예측이 빗나가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이 사례는 그때까지의 대량표본에 대한 맹신을 버리고 표집에 대한 이론적 재검토를 촉구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비교되는 소수표본 사례로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한 갤럽 회사에서 유권자 전체를 대상으로 2천 명을 표집하여 조사한 결과, 닉슨이 43% 득표할 것이라 예상했는데, 실제 선거 결과 42.9% 득표로 당선되었다. 이처럼 전집을 대표할 수 있게 표집을 하면 소규모 표집으로도 정확하게 결과를 추정할 수 있다.

셋째로, 응답자의 진실한 의견을 드러낼 최적의 조사 방법을 동원했는가 하는 점이다.

어느 여성 모임에서 잡지사 직원이 농담을 하면서, "남자 애인 있는 사람 손 들어봐"하니까. 수다떨기 좋아하는 회원들이 서로들 "저요, 저요"하며 장난삼아 손을 들었다. 며칠 후 그 잡지에 '한국 여성 60% 애인 있어!'라는 제목의 글이 실려 있었다. 응답의 진실성 여부는 조사결과의 신뢰성에 직결된다.

끝으로, 그 여론 조사를 주관하는 개인이나 기관·단체 구성원의 인생관이나 윤리의식을 빼놓을 수 없다. 정직성 공정성 등에 문제가 있다면 조사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선거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여론조사의 '설문 내용이나 조사 결과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거나, 특정정당이나 특정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면, 단순히 종사자들의 윤리의식 추락 등 개인문제를 넘어, 그로 인한 사회적 소통의 오작동, 더 나아가서는 국정 운영의 파행을 불러 올 수도 있다.

황영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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