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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사마귀로 등장한 김원웅

서준원 정치학 박사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20-08-24 08:04
서준원사진(2)
서준원 박사
광복회 김원웅 회장의 망언 탓에, 이번 광복절은 역사오염의 날이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를 뿌리째 뽑아내려는 김 회장의 독설은 요설에 가깝다. 한 개인의 역사인식을 탓하고 싶지 않지만, 광복회장의 외눈박이 관점과 선동적인 언사마저 묵과할 수 없다. 대한민국상이군경회를 비롯한 12개 보훈단체도 김 회장을 보훈단체장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오죽하면 김 회장 출신 고교 동창회에서도 동문 파적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까 싶다.

요즘 들어 보수세력을 겨냥한 각종 비아냥과 심지어 특정 인사들을 현충원 묘에서 파내자는 등 반일감정을 빌미삼아 날선 독설을 쏟아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뚝 떨어졌을 때, 이런 망언이 나왔다는 점에서 뭔가 석연치 않다. 김 회장의 망언에 청와대는 자신들과 상관없다고 손사래를 치지만, 이젠 문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

김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운동은 언급하지도 않고 '반민특위 청산'만을 되묻고 있다. 한국전쟁도 민족해방전쟁이라면서 북한을 두둔하고, 애국가와 안익태 선생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그렇다고 신뢰할 만한 근거나 사료를 내놓은 것도 아니다. 한국전쟁 논쟁은 학계에서도 오래전에 끝난 사안이다. 한때는 자본주의 특성을 고려한 수정주의론이 대두됐으나, 냉전체제 와해 이후에 쏟아져 나온 중국과 구 소련 쪽의 사료가 공개되면서 논쟁이 거의 종식됐다.



김 회장 자신은 정권의 정통성 논란이 있던 집권 여당에 몸담았다. '생계'탓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지만, 그런 논리라면 일제 치하에서 지냈던 자들의 친일이력은 모두가 '생존 의지' 탓이다. '생계와 생존'의 무게감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클까. 역사는 가끔은 정의롭지 못하게 흘러가기도 한다. 빼앗긴 나라에서 태어난 자들은 뼈아프고 서글픈 경험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게 생존의 현실이고, 역사의 흐름 속에 자리한 냉정한 원칙이었다.

역대 군 요인들이 친일파라고? 친일파인 그들이 왜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을 위해 헌신했을까. 그들이 일본을 위한 전쟁 기여 행적이 엄중했다면 패전국 전범으로 법정에 섰을 것이다. 서독 건국 이후 20여 년 동안에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인물들은 나치 치하에서 일했던 엘리트 출신들이다. 그중에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도 있다. 건국 직후에 헌신한 자들을 나치부역자로 내몰지도 않았다. 서독을 위한 애국심을 평가했을 뿐이다. 화해와 용서의 가치는 불변의 인류애에서 나온다.

김 회장은 야당-보수진영을 싸잡아 친일-반민족세력으로 칭하고 있다. 여당도 자신들의 인식과 견해를 달리하면 적폐세력으로 몰아가고 있다. 조선조의 당쟁도 이런 무논리적 무차별적인 세력 갈라치기는 아니었다. 현실이 이러니 여야가 툭하면 싸움질이다. 진지한 토론도 협치도 찾아보기 힘든 난국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증오의 감정으로 소모적인 남남갈등을 지속적으로 유발할 것인지, 미래가 암담하다. 국제사회에서도 국가 간의 증오심과 악감정마저도 외교로 풀어내는 시대다. 현충원은 대한민국이 만든 안식처로 일제와 무관하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을 모시는 곳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 한 자는 평가받아야 마땅하고, 반면에 우리의 정체성을 흔드는 시도는 기필코 저지해야 마땅하다. 그런 연유에서 역사는 간단없는 투쟁의 과정이다.

김일성도 일본치하에서 활동한 엘리트들을 과감하게 수용했다. 김일성 대학도 경성제국대학 출신의 교수들과 친일유학파들이 주도적으로 설립했다. 북한 역시 친일부역 여부를 떠나 과감하게 인재를 흡수했다. 이런 사실은 북한의 조선전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나라를 세웠지만, 정작에 국정운영을 이끌 인재들이 태부족한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역사는 지나간 정치다. 또한 정치는 현재의 역사다. 거짓말이 없는 역사책은 지루하지만, 그렇다고 사적인 감정과 현 정권의 입지를 고려한 편협하고 옹졸한 역사 분석과 친일청산 타령은 더 지루하고 고루하다. 김 회장의 망언을 대충 살펴보더라도, 길에서 주워들은 얘기를 생각없이 떠들고(도청도설, 道聽塗說), 달리는 수레 앞에서 겁 없이 대드는 사마귀가 떠오른다(당랑거철, 螳螂拒轍). 대한민국 역사의 수레바퀴는 일개 사마귀가 길을 막는다고 멈출 이유도 그럴 여유도 없다.

/서준원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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