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갱이 해장국 |
이 집은 1982년부터 '올갱이 해장국' 단품 메뉴만 파는 집으로 자리에 앉자마자 불과 5분도 안 되어 음식이 나온다. 해장국은 다슬기로 국물을 내고 살을 바늘로 빼낸 후 그 국물에 된장, 고추장, 파, 마늘, 아욱, 부추 등을 넣고 한소끔 끓여서 밀가루 달걀옷을 입힌 다슬기 살을 넣는다. 식당에 따라 고추장에 넣고 안 넣고 하는 차이가 있지만 충청도 지방의 다슬기 해장국은 거의 이 스타일이다. 한술 뜨니 구수하고 시원한 맛이 있다. 괴산이 올갱이 음식이 유명할 수밖에 없는 것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올갱이 해장국 |
어쩌면 다슬기 서식의 표집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슬기를 경남에서는 고둥, 경북에서는 고디,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강원도에서는 꼴팽이,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등등으로 불린다. 괴산에서는 올갱이라 한다.
그런데 외식업계에서는 표준말인 다슬기보다 올갱이라는 명칭을 더 사용하고 있다. 이는 괴산의 올갱이 음식의 유명세가 외식업체에 먼저 알려졌기 때문이다. 다슬기 중 담수산 다슬기는 3속 7종으로 나누는데, 다슬기, 곳체다슬기, 주름 다슬기, 좀주름 다슬기, 참 다슬기, 염주알다슬기, 띠 구슬다슬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 다슬기를 배틀 조개라고도 하는데, 지역마다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다슬기는 경남에서는 고둥, 경북에서는 고디, 골배이, 골부리, 전라도에서는 대사리, 대수리, 강원도에서는 꼴팽이 등으로 불리는데 중부 지방, 그중에서도 해산물을 접할 기회가 낮은 내륙 즉 충청북도, 영서에서는 '올뱅이(충주 등 동쪽지방)', 특히 괴산지역에서 그 생김새와 모양에 따라 또 한번 세분돼 불리고 있는데, 올갱이를 잡는 사람들은 껍데기에 오돌토돌한 작은 융기가 있는 것은 '까끌이', 껍데기가 다소 맨질 맨질한 것은 '뺀질이'. 그 중간의 것은 '반까끌이', 약간 둥그스럼한 것은 '사발이'라고 표현한다.
이중 '뺀질이'는 물 흐름이 빠른 계곡에서, '까끌이'는 물 흐름이 적은 댐 하부 등지에서 나온 것이며, 맛은 '뺀질이'가 가장 좋고, '사발이'는 계곡 깊은 곳에서 잡히나 근래에는 잘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괴산의 괴강 |
다슬기는 고문헌에서도 다양한 이름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슬기를 한자로 '와라'라고 하며, '나사'라고도 한다. 와(蝸)는 본디 땅에 사는 달팽이, 라(螺)는 바다에 사는 소라를 가리키는 글자로 중국 명나라 때 이시진(李時珍:1518~93)이 지은 약학책 『본초강목(本草綱目)』은 다슬기 사의 글자가 만들어진 내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중다야(師衆多也)는 많다는 뜻이다. 기형사와우(其形似蝸牛)꼴은 달팽이 비슷한데, 기류중다(其類衆多) 많은 숫자가 무리 지어 살기 때문에 고유이명(故有二名)이런 별명이 생겼다'라고 되어 있다.
다슬기는 사람이 보기에는 무척 느린 걸음을 한다. 때문에 蝸牛(와우)라는 표현도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와려(蝸廬)는 달팽이의 껍질처럼 작다는 뜻인데, 작게 지은 누추(陋醜)한 집의 비유(比喩) 하거나 자기(自己) 집을 겸손(謙遜)하게 이르는 말을 와실(蝸室), 와옥(蝸屋)이라고 한다. 다슬기가 사는 집은 협소하기 그지없다는 의미를 가진다. 때문에 조선 시대 지식인들은 다슬기 집을 청렴과 안빈낙도에 비유했다.
조선 단종(端宗)~성종(成宗) 때의 문신·학자 김종직(金宗直·1431~1492)은 조선 사림파의 개조로 말년에는 고향 경남 밀양으로 내려와 유유자적하는 삶을 살았다. 그때 다음과 같은 한시를 지었다. 김종직은 '작은 집'의 의미로 '와우집(蝸牛舍)'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인용문에 등장한 '응천'은 경남 밀양의 옛 지명이다.
한편 다슬기를 蝸牛(와우)·田螺(전라)·蝸螺(와라), 동의보감은 蝸牛(와우)·田螺(전라)·錄상螺(녹상라), 재물보는 蝸螺(와라)·田螺(전라), 물명류고는 鳴螺(명라)·田螺(전라)·蝸螺(와라)·錄상螺(녹상라) 등으로 표현했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이만영(李晩永)의 1798년(정조 22)에 지은 『재물보(才物譜)』 에서 올갱이를 '호수나 시냇물에 있으며 논우렁보다 작다'고 표현했다.
올갱이 |
뾰족한 껍질을 가진 작은 민물고둥 다슬기는 사는 곳에 따라 검기도 하고 누렇기도 하며 때로 흰 얼룩무늬가 나타나기도 하는 동아시아 고둥이다. 중국에선 민물에 살고 동글동글 똬리를 틀었다고 천권, 못을 닮았다고 정라(釘螺)라고도 한다. 일본에선 '가와니나(かわにな)'라고 부르는데 한자로 쓸 때는 중국처럼 천권이라고 쓴다.
중국 송(宋)나라 때 시인 조보지(晁補之)도 냇물 바닥에 새까맣게 붙은 다슬기를 떠올리며 이런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무성한 보리밭 일렁일렁 누런 물결, 이삭 덮은 메뚜기 떼 다슬기 같아라'
고려 고종 때 지은 가전(假傳) 국순전(麴醇傳)의 작자로 유명한 서하(西河) 임춘(林椿)도 다슬기에 대한 한시를 남겼다.'장마비 뒤의 장안에 나를 생각해 멀리 찾아왔네 그려 이 적막한 다슬기집 앞에 머무른 말 네 마리가 끄는 수레 간에 이름을 적지 말고 가소 세상에 내 이름이 다시 날까 두렵네'라고 읊었다.
조선 전기 성종(成宗)시대의 대표적인 관료문인 매계(梅溪) 조위(曺偉 :1454-1503)가 1477년 서울을 출발해 송도(松都)로 가는 길목인 임진강의 임진나루에서 지은 시다. '봄날의 강물은 맑게 흐르고 쪽 그림자가 너울대고 모래톱은 물결에 다 침식되었네. 깊은 곳엔 魚龍이 살고, 얕은 곳엔 다슬기가 살며, 빛에 반짝이는 만 이랑이 청동 그릇에 담긴 듯하네. 물가의 노거수는 푸른 산안개에 희미한데, 산닭이 날아오르니 꽃잎이 너울대네'를 읊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李瀷/1681~1763) 선생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제4권 만물 문에 와해 즉 다슬기 젓갈이 나온다. 『운서(韻書)』 에는, "와우(蝸牛 달팽이)다" 하였다.
송나라의 학자 육전(陸佃)은 "와우로 젓을 담글 수 있다"고 하였으며, 중국의 유교 경전 중 오경의 하나인 『예기(禮記)』에도 '식와해이과 다슬기젓을 오이와 함께 먹는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올갱이 해장국 |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따르면, "다슬기는 간염, 지방간, 간경화 등 간 질환의 치료 및 개선에 특별한 효험이 있으며, 숙취 해소와 신경통, 시력보호는 물론, 위장기능 개선(위통, 위장병, 소화불량, 변비 해소 등), 자주 빈혈증세를 느끼는 수험생에 효과가 있으며, 골다공증 예방 및 치료 효과, 무지방, 고단백질 건강식품(다이어트 효과)이다. 또 성질은 차고 맛은 달며 독은 없으며, 간열(肝烈)과 눈의 충혈, 통증을 다스리고 신장에 작용하며 대소변을 잘나게 하고, 위통과 소화불량을 치료하고 열독과 갈증을 푼다"고 그 효능을 말하고 있다. 또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다슬기는 열을 내리고, 술에 취한 것을 깨어나게 하며, 갈증을 멈춘다. 대소변을 잘 나가게 하며, 열독을 푼다. 간 기능 회복과 황달을 제거하며, 이뇨 작용을 촉진한다. 체내의 독소를 배설하며, 부종을 없애고, 눈을 밝게 한다. 우울증을 없애고,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 칼슘이 풍부하며, 골다공증을 예방한다. 혈액 속의 헤모글로빈을 만든다. 그런데 신장 및 담낭 결석예방이 되는데 이유는 다슬기 속에 마그네슘이 풍부하기 때문이다"라고 다슬기의 효능이 기록되어 있다.
다슬기는 기생충의 일종인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이므로 날것으로 먹지 않는 것이 좋다. 다만 익히면 탈 없는 반찬이기도 하고 간(肝)에 좋은 약이기도 하다. 또 다슬기는 어린 반딧불이의 숙주(宿主)이기도 하다.
진흙에 묻어 삭힌 다슬기 빈 껍질은 귀안정(鬼眼睛), 곧 귀신 눈알이라는 약이다. 다슬기 살던 냇물이 하수구로 변한 도시엔 반딧불이 사라지고 삶도 덩달아 황폐해졌다. 복개천(覆蓋川) 뻐끔한 출구가 귀신 눈알 같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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