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이슈현장] 상실시대, 박물관의 부활…금동대향로를 찾는 발길 '북적'

부여박물관 작년 9월 기준 46만명 관람객 다녀가
코로나19 관광산업 후유증 때 박물관 먼저 회복
금동대향로 특별전 향기맡고 만지고 발견의 재미
"화려한 바깥에서 벗어나 사유와 치유의 공간"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4-01-03 17:14

신문게재 2024-01-04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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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에 2023년 64만명이 다녀가는 등 코로나19 이전 연간 60만명 관람객 시대를 회복했다.부여박물관에 전시 중인 백제금동대향로는 새해를 맞아 특별전시 중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박물관이 부활하고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에 2023년 12월말 기준 64만 명이 다녀갔다. 충남 부여군이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을 때 2016년 연간 67만 명이 방문한 '연간 60만명' 수준을 지난해 회복한 것이다. 코로나19 후유증으로 관광산업이 여전히 위축돼 있는 환경에서 박물관 부활 의미는 남다르다. 사람들은 박물관을 왜 찾는 것일까. 의문을 갖고 부여박물관에서 2024년 2월 12일까지 진행 중인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특별전에 다녀왔다. <편집자 주>

12월 30일 부여박물관 특별전시관에 오후 4시를 넘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관람객이 적지 않았다. 줄을 서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초등학생 아이들을 인솔해 찾은 가족부터 푸릇푸릇한 연인과 중년의 부부까지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어우러진 모습부터 인상 깊게 다가왔다. 여느 박물관에서 들어봤음직 한 "빨리 나가자"가 아니라 "여기 좀 와봐"라는 아이들의 외침이 더 자주 들렸다. 이유는 전시물 중에 스마트폰처럼 조작하거나 낯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것들이 호기심을 끌어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백제금동대향로 특별전을 진행 중인 부여박물관 기획전시관에 입장하면 관람객들이 허리를 숙여 전시물에 코를 대는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때야 관람객들은 금동대향로 실제 쓰임새가 제사에서 향을 피우듯이 백제시대 왕실에서 사용했을 향로라는 것을 깨닫고 준비된 도구에 코를 가져가는 모습이다. 금동대향로는 향을 피워 나쁜 기운을 막고 해충을 쫓는 향로의 일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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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금동대향로에 피웠음직한 향기를 체험할 수 있도록 부여박물관 체험시설이 마련되어 관람객이 코를 대고 냄새를 맡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금동대향로가 품거나 피웠을 향은 이미 흩어지고 사라졌지만, 백제인이 당대에 즐겼을 향은 무엇이었을 지 연구를 소개하는 게 이번 특별전의 목표처럼 보였다. 이날 인도네시아에서 자라는 차조기과 식물의 잎을 건조한 '곽향'을 맡아보고,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자라는 정자나무의 꽃봉오리를 건조한 '정향'은 묵직한 입맛의 와인이 떠오르는 듯한 감상을 받았다. 또 전시관에서는 실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공에서 수습된 청동합 안에서 발견된 유향수지(Boswellia resin)를 재현해 보스웰니아 유향을 맡을 수 있었는데, 금동대향로 안에 붉은 숯을 깔고 그 위에 보스웰니아를 놓아 우아한 향기가 향로를 감싸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었다. 무왕 35년 왕흥사가 완성되고 왕이 매번 배를 타고 절에 들어가 행향(行香)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았고, 2020년 부여 쌍북리에서는 또 다른 손잡이 향로가 발견된 것에 비춰 향을 음미하는 문화는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백제인에게 실존했던 관습으로 여겨진다.

전시관 서 측에 이르자 시간을 거슬러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의 한 절터 발굴 현장에 도착한 듯 벽면에 스토리보드가 펼쳐졌다. 백제금동대향로는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 진흙 속에 완전히 잠긴 상태서 발견됐다. 타원형 아궁이 속 나무상자 안에서 뚜껑과 몸체가 분리되 채 출토 되었으며, 향로 위로 기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백제금동대향로를 나무 상자 안에 넣고 기와를 켜켜이 쌓아 숨기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6세기 중반 전쟁의 참패와 백제 성왕의 죽음으로 위태롭던 때 누군가 위급한 상황에 백제금동대향로를 목제 수조 안에 묻어 저장한 뒤 기와를 켜켜이 쌓아 숨기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아, 백제여…'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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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서쪽 골짜기 절터에서 출토 당시 금동대향로 모습.  (사진=부여박물관 제공)
자리를 옮겨 액정화면이 크게 펼쳐진 키오스크가 사각기둥에 세 방향으로 불을 밝힌 체험공간으로 입장하자, 아이들이 거리낌 없이 화면에 다가가 터치를 시작한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만지며 금동대향로에 새긴 인물상과 동물상을 하나씩 큰 화면으로 소환해 숨은 이야기를 읽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휙휙 보내며 다음 영상과 사진을 소환했다. 금동대향로에 형상화한 문양을 보면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 구조로 되어 있다. 우리가 지구본을 휙휙 돌리며 각 나라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처럼,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대향로를 관찰하면 14명의 인물과 악기를 연주하는 5명의 악사와 호랑이, 코끼리, 원숭이 등 55마리의 동물, 용, 봉황 등 12마리의 상상 속 동물이 산봉우리와 연꽃잎에 교차해 새겨진 모습을 이야기처럼 풀어낼 수 있다. 이 밖에 6종의 식물 20군데 바위·산 중턱을 가르며 난 산길, 시냇물, 폭포 등이 순서대로 보인다.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인물과 짐승들은 대부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행된다. 두 발을 능선에 걸치고 봉우리 뒤에서 바로 달려 나올 것 같은 멧돼지가 새겨진 곳 옆에는 산봉우리 사이를 말을 타고 달리면서 뒤돌아 활시위를 당기는 사람이 표현돼 짝을 이루는 것처럼 말이다. 코끼리를 탄 사람이 표현되었는데 부여 부소산 절터에 코끼리 조소 상이 출토되어 백제인이 코끼리를 알았거나 본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폭포 아래 머리 감는 사람을 비롯해 뒤를 돌아보며 으르렁거리는 맹수 뒷다리 사이에 젖을 빠는 새끼를 함께 새겨 넣은 것이 눈길을 끄는지 관람객들이 명상에 잠긴 듯 한참을 머물며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부여박물관은 특별전시관에 금동대향로 국보 실물을 전시 중이다.

전시관을 나서기 전 마지막까지 호기심 있게 바라본 것은 12개의 연기구멍 중에 오악사 앞줄의 연기구멍 5개와 뒷줄의 연기구멍 3개가 표면을 거칠게 파고들어 확장하는 과정에서 남긴 흠집이었다. 구멍에 날카로운 도구의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는데 향로 내부의 불이 꺼지지 않고 향로의 공기가 원활하게 흡입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향을 피워보고 고민하는 백제 장인의 모습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용 뿔에 남은 절단 흔적과 승천하는 용을 떠받치듯 표현된 물결 사이에 달린 덩어리 등 백제 장인의 손자국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곳에 있다.

은화수 부여박물관장은 "박물관 전시문화가 많이 바뀌어 체험하고 어린이를 위한 전시부터 공연을 위한 무대도 마련해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고 있다"라며 "화려하고 영상물에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이 오히려 박물관에서 차분히 예술품을 바라보며 사유하고 치유의 공간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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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박물관 연도별 관람객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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