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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디지털 시대, 디지털 빈곤을 생각하며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송익준 기자

송익준 기자

  • 승인 2024-03-31 09:49
이형권
이형권 교수
얼마 전에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어느 할아버지가 새벽에 무인 꽃 가게에 가서 결재하지 않고 꽃다발을 가져갔다가, 꽃집 주인이 출근하는 시간에 다시 나타나 현금으로 갚았다는 것이다. 사실 별것 아닌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할아버지가 보여준 아내의 생일을 위한 애틋한 마음과 정직한 행동은 많은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더 있었다. 할아버지가 새벽에 무단으로 꽃다발을 들고 나간 이유는 매장에 있는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몰라서였다고 한다. 이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름다운 감동의 서사에서 우리 사회 소외계층의 디지털 빈곤이라는 심각한 사회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소외계층의 디지털 빈곤 문제는 단순히 키오스크 사용과 관련된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급격한 고령화나 세대 갈등, 빈부 격차와 같은 커다란 사회 문제를 함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저학력자, 경제적 소수자 등은 디지털 기기를 다루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현대인들은 보통 디지털 치매가 온다고 할 정도로 디지털 문명을 빈도 높게 활용하고 있지만, 소외계층은 사정이 다르다. 컴퓨터는 물론 유튜브나 페이스북, 줌, 틱톡, 인스타그램, 밴드, 카카오 등 각종 SNS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디지털화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디지털 문명은 이미 모든 분야에서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직업을 구하는 일에서부터, 직장의 업무나 일상생활, 사교나 취미 활동에 이르기까지 디지털 기기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되었다. 웬만한 식당이나 점포에는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있어서 그것을 사용할 줄 모르면 식사 주문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얼마 전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디지털 기기에 기반한 비대면 문화는 사회 곳곳에서 급격히 확산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소외계층은 여전히 현대 사회에서 요구되는 디지털 기술이나 정보에 대한 접근성과 이해도가 낮은 편이다.



디지털 빈곤은 소외계층의 사회 활동을 제한하고 고립을 심화시킨다. 우리나라 소외계층의 경제적 빈곤율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인데, 여기에 디지털 빈곤이 더해져서 그 정도가 더 커지고 있다. 주목할 것은 디지털 빈곤이 단지 소외계층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디지털 빈부 격차는 계층과 세대 사이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결국에는 우리 사회 전체의 안정감을 해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사회를 그대로 방관하게 되면 계층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구성원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더 큰 문제는 소외계층의 디지털 빈곤에 대해 우리 사회가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번 4.10 총선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관한 이슈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고 있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이제라도 소외계층의 디지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를 비롯하여 각종 기관이나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기술 교육 프로그램의 강화하고, 디지털 서비스의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제도적 정비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디지털 빈곤 해결은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인층을 비롯한 소외계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생각과 행동을 바꿔야 한다. 현대 사회는 누구에게나 컴퓨터나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 기기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이 요구에 부응해야만 시대에 뒤떨어진 고리타분한 사람이라는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는 디지털 기기로 사회와 소통하고 식사나 여행 예약, 쇼핑, 결재 등을 익숙하게 할 수 있도록 디지털 능력을 키워야 한다. 혹시라도 사랑하는 가족의 생일날에 무인 꽃집의 키오스크 사용법을 몰라서 소중한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형권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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