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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32- 서산 태안 사람들의 소올푸드 '박속밀국낙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지윤 기자

김지윤 기자

  • 승인 2024-05-27 17:25
  • 수정 2024-08-12 09:13

신문게재 2024-05-28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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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가로림만 중왕리갯벌체험장.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이번 주는 서산 태안지역의 애환이 깃든 '소울푸드'인 '박속밀국낙지' 취재를 위해 집을 나섰다.

서산시 팔봉면(八峰面)·지곡면(地谷面)·대산면(大山面)과 태안군 이원면(梨園面)·원북면(遠北面)·태안읍으로 펼쳐진 길이 25km. 너비 2~3km. 태안반도의 지협부(地峽部)를 끼고 남쪽 천수만(淺水灣)의 반대쪽에 만입한 가로림만(加露林灣) 갯벌이 펼쳐 져 있다.

가로림만(加露林灣) 낙지를 더쳐 주는 것은 이른바 '뻘낙지'이기 때문이다. 어린 낙지는 다른 지역의 세발낙지와 비교해 다리가 짧지만, 더 굵고, 머리도 더 크다. 게다가 가로림만은 세계 5대 갯벌로 꼽힐 정도로 넓고 우수한 생태계를 자랑한다. 청정한 갯벌에서 능쟁이와 바지락 등 먹잇감이 널려 있기 때문에 활발하게 움직이지 않고도 먹고살 수 있어 각종 영양분을 흡수해 감칠맛이 더 뛰어나다.



서산 16개, 태안 8개 등 가로림만 주변 24개 어촌계 중 중왕리, 도성리 등 낙지를 잡는 곳이 절반을 넘는다. 중왕2리 100가구 가운데 60가구가 낙지잡이 하는 것으로 미뤄 가로림만(加露林灣) 전역에서 600가구 이상이 잡는 것으로 추정된다.

어선을 가진 주민도 초봄에 주꾸미와 꽃게를 잡다가 이맘때면 낙지잡이로 바꿀 정도로 밀국낙지에 들어가는 세발낙지 집산지라고 한다. 이렇게 잡은 낙지는 서산에서 오는 중간 상인들에게 판매하거나 마을 횟집과 음식점에 넘긴다고 한다.

깨끗하고 품이 넓은 가로림만은 각종 어패류 산란장이어서 다른 곳에서 낙지가 끊임없이 유입되기 때문에 몸집이 커진 가을낙지도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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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왕리 낙지 조형물. (사진= 김영복 연구가)
필자는 가로림만(加露林灣) 갯벌 중 서산시 지곡면 중왕리 갯벌을 찾았다. 마을 초입에서 급경사 길 아래로 바라다본 넓은 갯벌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마을에 들어서니 재미있는 낙지 조형물이 서 있고, 앞에는 재미있는 글귀가 눈에 띈다. '낙지 어디서 낙지 서산 중왕리에서 낙지^^'예쁘다.

옛말에 보릿고개가 아무리 모질다 해도 바닷가 사람들은 굶어 죽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처럼 바다 특히 갯벌은 인간에게 내 주는 품이 넓고 깊다.

그렇지만 한국전쟁을 치른 지 얼마 안 되는 50년대에서 8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는 바닷가 사람들이라고 해서 배고픈 보릿고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을에 추수한 양식을 겨우내 먹고 봄보리를 추수하는 시기인 초여름까지 양식이 떨어지는 시기 5~6월 지금이 바로 그 시기다.

이 시기가 되면 밀이 적당히 익고, 벌 속에 산란한 낙지는 연하고 부드러운 세발낙지로 성장하며, 옛 초가집 지붕 위에는 나물 해먹기 알맞을 만큼 박이 자라 있어 이 세 가지 식재료가 '박속밀국낙지'라는 향토음식이 탄생하는 신선한 재료가 된다.

이'박속밀국낙지'야 말로 서산. 태안 사람들의 애환이 깃든 춘궁기에 먹는 구황음식 중에 하나이며, 이 음식이 여름까지 계속되어 한여름 더위를 추스르는 복중 보양식이었다.

'박속밀국낙지'는 박과 물, 간장을 함께 넣어 끓인 육수에 칼국수를 넣고 끓으면 이곳에 밀국과 낙지를 넣어 양념을 한 음식이다.

이 음식은 서산. 태안 사람들은 보릿고개의 절정에 이른 5~6월이면 밀밭에서 햇밀을 훌 터 와 곱게 빻아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드는데, 이를 서산과 태안에서는 '밀국'이라고 한다.

이 시기 가로림만(加露林灣)은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해, 인근 해안에서 썰물 때, 어패류와 연체류인 낙지 등이 많이 생산되었다.

흔히 낙지의 제철은 가을로 알고 있지만, 낙지 중에서 가장 맛있다는 세발낙지는 음력 4~5월, 즉 늦은 봄부터 초여름까지가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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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국낙지라 불리는 세발낙지. (사진= 김영복 연구가)
세발 낙지는 '아주 가느다란[細(세)] 발을 가진 낙지'라는 뜻으로 다른 낙지들처럼 다리 수는 8개이다.

낙지를 석거(石距), 소팔초어(小八梢魚), 장어(章魚), 장거어(章擧魚), 낙제(絡蹄), 낙체(絡締), 낙자, 낙짜, 낙쭈, 낙찌, 낙치 등 다양하게 불리며, 영어로는 'Live octopus'라고 부른다.

낙지 크기는 세발낙지(40g), 소낙지(80g), 중낙지(100g), 대낙지(140g)로 구분된다.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인 정약용의 『자산어보(玆山魚譜)』에는 "겨울에는 틀어 박혀 구멍 속에 새끼를 낳는다. 새끼는 그 어미를 먹는다. 빛깔은 하얗고 맛이 감미로우며, 회나 국 및 포에 좋다. 이를 먹으면 사람의 원기를 돋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 마리를 먹이면 곧 강한 힘을 갖게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낙지는 피로 회복에 좋은 음식이다. 민간에서는 원기 회복을 위해 낙지를 주로 먹었으며, 그중에서도 발이 가는 세발낙지를 최고로 쳤다.

낙지는 봄인 4∼5월에 산란하는데, 갯벌에 구멍을 뚫고 암수 낙지가 들어가 산란해 수정하며, 수정이 끝나면 숫 낙지는 필사적으로 구멍을 빠져나오려 하지만 곧 암 낙지에게 잡아먹힌다.

암 낙지는 숫 낙지를 잡아먹고 기운을 차리지만, 그 또한 새끼들을 위해 자기 몸을 희생한다.

알에서 깬 새끼들은 갯벌 구멍 속에서 약 1개월에서 2개월 정도 자라면 세발낙지가 되는데, 여름까지 어미 몸을 뜯어먹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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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국낙지탕. (사진= 김영복 연구가)
가로림만(加露林灣) 에서는 산란한 낙지들이 죽어서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렇게 세발낙지들이 자라면 이른바 불낙지가 된다. 낙지 이름은 크기에 따라서 다르게 부르기도 하지만, 잡는 방법에 따라서도 다르게 부른다. 손낙지, 홰낙지 등은 그 중 대표적인 이름들이다.

낙지 중 '세발낙지'가 특히 맛있는데, 세발낙지는 발이 세 개라는 뜻이 아니라 발이 작고 가늘어 가늘 세(細)를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여름을 지낸 세발낙지는 가을철 아침과 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 때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우리 조상들은 이 낙지를 '꽃낙지'라 부르며 최고로 쳤다. 영양소가 풍부한 낙지는 예로부터 '갯벌의 산삼'으로 불렸다.

낙지는 기본적으로 뻘 구멍을 손으로 헤집어서 잡는다. 낙지구멍은 낙지가 뻘속에서 숨을 쉬면서 불어 내놓는 물 때문에 뽀하게 솟아올라 있다. 이것을 '부럿'이라고 하는데, '부럿' 주위에는 위장을 하기 위한 구멍들이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다. 이 '부럿'을 잘못 건드리면 연결되어 있는 구멍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러기에 낙지 잡는 것도 상당한 기술을 요한다. 여자들이 낙지 구멍에 팔을 쑤셔 넣어 잡는 낙지는 "팔낙지"라고 한다.

낙지는 산란기인 4~5월 금어기가 끝나고 이달부터 잡기 시작한 낙지는 광활한 가로림만 갯벌에 지천이다. 이 시기는 아직 날이 덜 뜨겁고 새끼여서 한두 삽이면 낙지가 나오지만, 땡볕이 내리쬐고 몸집이 엄청나게 커지면 1m까지 파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가을에는 짝짓기나 영역 싸움하느라 한 구멍에 큰 낙지 두 마리가 있을 때도 있다.

보통 갯벌이 훤히 드러나는 썰물 4시간 동안 낮에 많이 잡는 사람은 하루 100마리 이상, 보통은 70~80마리를 족히 잡는다고 한다. 지금부터 7월까지 잡히는 낙지가 최고로 맛이 있을 때라고 한다.

특히 5~6월 사이가 되면 낙지는 7~10 정도 자란 세발낙지라 불리는 어린낙지가 육질이 연하고 맛이 좋아 썰지 않고, 통째로 밀국에 넣어 조리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로림만 주변 마을 주민들은 요즘 잡히는 세발낙지를 '밀국낙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밀국낙지가 잡히는 시기가 되면 옛날 지붕위에서 자라던 박[匏瓜]도 적당히 자라 하얀 박속을 먹을 수 있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박[匏瓜]을 먹기 시작한 것은 삼국시대부터라고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신라본기(新羅本紀) 박혁거세 조에 진한 사람들이 표주박 호(瓠)를 박이라고 나오며, 고려시대부터 조선 말기까지에도 고려 고종 때의 문장가로 유명한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6가지 채소인 박과 외, 가지, 순무, 파, 아욱의 조리가공법이 시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 까지 박속을 식용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박은 나물로 먹거나 김치를 담가 먹는데, 사실 박은 충청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으로 대표적인 음식이 박김치다.

어린 박을 씻어 껍질을 벗기고 반으로 갈라 속을 긁어내고 얇게 썰어 소금에 절인다. 배는 껍질을 벗겨 4등분하여 박과 같이 썬다. 절인 박은 헹구고 배와 같이 갖은 양념을 하여 담고 심심하게 소금 간을 맞춘 김칫국을 붓는다. 잣을 띄워낸다. 옥 같은 빛이 나는 정갈한 김치가 바로 충청도의 박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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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발낙지. (사진= 김영복 연구가)
'박속밀국낙지'는 속설에 의하면 서산으로 낙향한 선비들이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실 '밀국낙지'는 옛날 6월 밀이나 보리를 수확하면 맷돌에 갈아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으면서 새끼 낙지를 넣었지만 자주 있지는 않았는데 20여 년 전쯤인가 부터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밀국낙지로 불리는 이 지역의 갯벌 낙지가 더 탱탱하고 식감이 훨씬 좋다"면서 "특히 오래 삶아도 전혀 질기지가 않다. 그물로 잡은 낙지는 질기다"고 했다.

서산. 태안에서는 '박속낙지탕' , '밀국낙지탕', '박속밀국낙지탕' 등 낙지탕 이름이 여럿이다. 담백한 낙지 맛에 박속이 더해지면 국물이 훨씬 시원해 미식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필자는 중왕리에 있는 '낙지한마당'이라는 음식점에 들어가 '밀국낙지'를 시켰다.

'밀국낙지'냄비에 무와 박, 마른 고추를 넣은 냄비가 나오고 10~15㎝의 살아 있는 어린낙지를 투명한 그릇에 담아 왔다.

맑은 육수가 팔팔 끓어오르면 씻어 놓은 낙지를 통째로 넣었다. 낙지는 오래 끓이면 맛이 없고 질겨지므로 단시간에 끓여서 건져 먹었다. 국물이 시원하고 낙지가 부드러웠다. 낙지를 다 먹고, 국물에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었다.

낙지를 생으로 먹기도 하는데, 어린 낙지는 젊은이와 아이들이 좋아하고 큰 낙지는 주로 나이 든 어르신들이 즐겨 먹는다고 한다. 생으로 먹는 날 낙지는 머리에 마늘을 집어넣고 초고추장에 찍거나 소금을 섞은 참기름 장에 찍어 통째로 한입에 넣어 씹는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는 각종 한약재와 과일을 넣고 푹 끓인 간장에 일주일동안 숙성시켜 먹는 '간장낙지'도 별미 중에 별미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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