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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순수한 마음은 고가이다

양동길/시인, 수필가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4-07-26 08:56
복숭아 철이다 보니, 아내가 선물 받았다며 과일 몇 개든 봉지를 들고 왔다. 털이 없는 매끈한 것이어서 웬 자두냐고 물었다. 자두가 아니라 복숭아라고 한다. 이때까지도 복숭아는 털이 있는 것으로만 알았던 나는 자두라고 우겼다. 입씨름하며 다시 보니, 자두보다 좀 더 커 보인다. 천도복숭아였던 것이다.

우리지역에서 별로 생산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우매한 탓이다. 막연히 클 것이라 생각한 이미지도 한 몫 했다. 참 무심하게 살았다. 수없이 회자되는 과일인데도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천도(天桃)'라는 말의 '도'가 복숭아를 의미해서 천도복숭아라 부르는 것은 겹말이다. 그냥 '복숭아'를 빼고 '천도'라 부르기도 한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 BC 154 ~ 93)이야기가 먼저 떠오른다. 동방삭은 중국 한 무제 때 사람으로 기언기행으로 유명하다. 수명도 과장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 전해져 각종 전설로 전승된다.



중국 신화에 등장하는 서왕모는 도교 최고지위의 신이다. 불로장생을 관장하기도 하였는데, 반도원(蟠桃園)이란 과수원에서, 먹으면 불로장생하는 복숭아를 매년 수확하여 신선이나 그를 꿈꾸는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 그 복숭아를 동방삭이 훔쳐 먹어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것이다. 일갑자는 60년이니, 18만 년을 살았다는 이야기다.

삼천갑자 동박삭 이야기는 코미디언 서영춘이 코미디에 차용하여 더욱 널리 알려졌다. 어렵사리 얻은 귀한 아들의 장수를 빌며 지었다는 이름이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타 워리워리 세브리깡 무두셀라 구름이 허리케인에 담벼락 담벼락에 서생원 서생원에 고양이 고양이엔 바둑이 바둑이는 돌돌이" 수한무 자체가 수명이 끝이 없다는 말인데, 각종 장수 생물의 이름을 다 같다 붙인 것이다. 참고로, 미술사 공부하다 보니 실제로 긴 이름도 만났다.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의 원래 이름이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피카소(Pablo Diego Jos?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a de los Remedios Cipriano de la Sant?sima Trinidad Ruiz y Picasso)'이다. 이유는 좀 다르다. 자식을 낳으면 양 부모의 성을 합치는 이베리아 반도의 문화 때문에 계속 합치다보니 길어진 것이란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손오공도 용궁에서 선도(仙桃)와 선단(仙丹)을 훔쳐 먹는다. 선계에서 신들과 싸우고 각종 악행을 저지르고 행패를 벌이다 부처에 의해 오행산에 봉인된다. 500년 후 삼장법사 현장에게 구출되어 그의 첫 번째 제자가 된다.

이 밖에도 복숭아밭이 이상세계로 그려지거나 복숭아가 불로장생의 명약처럼 그려진 이야기가 많다.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04.10.~1956.09.06.) 작품에도 자주 등장한다. 여러 가지 일화도 전한다. 그는 한국 근대 서양화의 거목, 살아서는 궁핍했으나 신화가 된 소의 화가, 궁핍한 화가, 가장 한국적인 화가, 가장 대중적인 화가, 순순하고 진솔한 화가로 불린다. 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고달프고 불행한 삶으로 일관하다 세상을 떠났지만, 사후에 진가가 인정되어 빈센트 반 코흐에 비견되기도 한다.

이중섭이 1945년 이남덕과 결혼하여, 이듬해 첫 번째 얻은 아들을 잃게 된다. 얼마나 충격이 크고 애처로웠으랴, 무력함은 얼마나 컸으랴? 그림으로 관에다 천도복숭아를 넣어 주기도하고, 마음껏 갖고 놀게도 한다.

오래 전 이중섭 전기를 세 권 읽은 일이 있다. 그의 순수함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던 이야기다. 막걸리를 좋아했으나 돈이 없었다. 술 생각이 나면 선술집 앞에서 어정거렸다. 사정을 잘 아는 마음씨 고운 주인아주머니가 마침 보게 되면, 불러서 대포 한 잔씩 건넸다. 그러던 어느 날, 역시나 선술집 앞을 서성였지만 부르지 않았다. 알고 보니 아주머니가 아파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늘 감사하며 살았던 마음과 달리,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었다. 그는 담뱃갑 은박지에 못으로 그림을 그렸다. 천도복숭아 그림이다. 선술집에 들어가 "드시고 빨리 나으세요." 누워있는 아주머니 머리맡에 놓아두고 뛰쳐나왔다.

확실한 얘기를 전하려고 찾아보았으나 그 책을 찾을 수 없다. 인터넷상에는 세 살 아래 친구 구상 시인의 병문안에 천도복숭아 그림을 들고 갔다는 이야기만 무수히 널려있다. 순수한 마음을 전하는 내용은 큰 차이가 없다.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도 대단한 가치로 대우 받는다. 선술집 아주머니가 잘 보관하였는지 궁금하다. 마음뿐이라고 가벼이 여기지 말자. 순수한 마음은 무엇보다 고가이다. 소중히 잘 간직해야 한다.

양동길/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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