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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희 공주교동초 교사 |
그러나 사실, 새학기 첫날의 밤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낮 동안 아이들에게 받은 온기를 되새기면서도, 나는 여전히 이곳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지,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선생님이 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새로운 교실에서 나는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 이곳이 나의 자리일까. 두려운 마음과 설렘이 교차하는 밤, 그 고민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첫 수업시간. 박준 시인의 그림책 '우리는 안녕'을 읽었다. 안녕, 이라는 말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짐과 만남, 그 사이 어디쯤에서 우리는 안녕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안녕이 어떤 마음으로 건네지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닿는 온도가 달라진다. 책 속의 인물처럼, 나도 이곳에서 내가 건넨 '안녕'이 어떤 의미로 남을지 궁금해졌다.
책을 읽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안녕이라는 말이 너희한테는 어떤 의미야?"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전학을 왔을 때 무서웠는데, 친구들이 안녕이라고 해줬어요."
또 다른 아이는 "안녕이라고 했는데, 친구가 다시 안녕이라고 해줬어요."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우리는 생각보다 쉽게 연결되고, 생각보다 쉽게 서로를 안아줄 수 있는 존재들이구나. 이 아이들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낯선 곳에서 마음을 여는 일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작은 순간들이 모여 어느새 익숙함이 된다. 쉬는 시간, 한 아이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선생님! 우리가 제일 잘하는 놀이 보여줄게요!" 그렇게 시작된 놀이 시간. 나는 처음엔 조용히 지켜보려 했지만, 어느새 아이들 틈에서 함께 웃고 뛰고 있었다. 교실에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의 자리도, 나를 향한 아이들의 마음도, 그렇게 하나둘 채워지고 있다는 것을.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며 다시 우리는 안녕을 떠올렸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뭐였어?"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안녕이라고 했을 때, 꼭 다시 만날 거라는 거요!"
또 다른 아이는 "처음엔 헤어지는 줄 알았는데, 다시 만나는 거였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대답이 나에게 위로처럼 들렸다. 안녕이라는 말 속에 담긴 따뜻한 의미를, 이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과 인사하는 순간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다. 교실 문을 열며 건네는 "안녕", 복도에서 마주치며 나누는 짧은 눈맞춤, 쉬는 시간 작은 손을 흔들며 보내는 미소. 어쩌면 교육이라는 것은 그렇게 소소한 순간들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은 새로운 환경이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내 모습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매일 아이들에게 건네는 안녕 속에서 나도 변해가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서서히 나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아이들의 목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하루의 끝에서 "선생님, 내일도 만나요!"라고 말하는 맑은 목소리가 나를 다시 세운다.
아이들의 작은 손이 내 손을 잡고, 그 온기가 나를 감싼다. 낯선 교실이 어느새 익숙한 곳이 돼간다.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내일 또 만나자." 그리고, 그 안녕이 또 다른 내일을 이어간다. 새로운 시작이지만, 이제 확신한다.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순간들이야말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것을. /이윤희 공주교동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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