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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기한 대전대 교수 |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것 가운데 특징적인 하나의 단면을 꼽으라면 단연 확대지향적인 문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확대란 크기(size)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는데, 우리에게 있어 이 크기 문화란 거의 신앙의 차원에 놓여 있다. 이 문화에 대한 유령들은 지금 온 사회를 뒤덮고 있다. 가령, 자동차를 살 경우에 무조건 큰 차를 사야 한다. 그 하나가 대형차 그랜저의 경우다. 한때 한국인의 성공 보증 수표였던 이 승용차는 그래서 잘 나가는 아빠들의 차였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아빠 차가 아니라 오빠 차가 됐다. 그만큼 대중화되었다는 뜻이 된다. 크기에 대한 숭배가 차의 종류를 바꿔버린 것이다.
우리의 의식주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집의 경우는 또 어떠한가. 방 한두 칸이 있는 소형 평수에는 관심이 없다. 방은 적어도 3개 이상이 돼야 하고 4개가 있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은 집으로 인식된다. 방이 4개라면, 외국의 사례에 비교하면 대저택에 해당하는 큰 집이다. 이 크기 문화들에 대한 지향은 비단 이런 생활 공간에서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크게 되려면 대도시로 가야한다고들 한다. 그 결과 서울은 비대하다 못해 거대한 수도권으로 확대됐고 그 상대적인 자리에 놓인 농어촌은 인구 소멸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지만 의원(clinic)을 가기에는 뭔가 신뢰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병원(hospital)을 찾게 되고, 대학 병원(university hospital)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니 병원도 확대시켜 건설하려 든다. 크기가 또 다른 크기를 계속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는 큰 시장에 가야하고, 서점도 규모가 큰 곳으로 가야 한다. 사우나도 가급적 큰 장소가 우선시 된다. 종교 시설은 또 어떠한가. 이미 규모상으로 볼 때 한국에는 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5개가 있다고 한다. 작은 교회는 무언가 부족해 보이니 큰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가 이런 결과를 만들었다. 회사도 크게 그룹화해야 하고 취준생은 그런 대기업만 선호한다.
이는 대학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사회에서 단과 대학(college)은 찾아보기 어렵고 종합 대학(university)만이 존재한다. 칼리지만으로는 부족하니 적어도 유니버시티 정도는 되어야 비로소 좋은 대학이라고 생각한 관념이 만든 결과다. 전문성은 뒷전이다. '작지만 강한 대학'은 흔히 통용되어도 '크지만 강한 대학'이란 말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대학에서 연구자의 성과물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페이지가 많은 책은 '어마무시한' 성과라 하고 그렇지 않은 소규모의 책은 관심 밖이다. 거기에 담긴 내용이 어떠하든 상관없다.
확대지향적인 문화에는 사람의 신체도 예외가 아니다. 사이즈는 무조건 커야 좋다고 한다. 키에 대한 것도 그 하나다. 결혼 상대방의 요건 가운데 남성은 키가 몇 cm이상이어야 하고, 여성 또한 몇 cm이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 있다.
도대체 이 확대지향적인 문화는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그 하나의 사례로 들 수 있는 것이 조선 시대 이후로 만연한 사대주의(事大主義)이다. 사대주의란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를 섬기고 여기에 의지하여 스스로의 존립을 유지하려는 태도"이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함의가 하나 담겨 있다. 바로 큰 것(大)을 떠받들고자(事) 하는 의식이다. 결핍이 존재할 때, 이를 벌충하려는 지향성이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확대지향적인 인간형, 곧 사이즈 컴플렉스(size complex) 인간형을 만들어낸 근원이다. /송기한 대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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