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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하추동]웅크린 동안목(冬安木)의 삶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임병안 기자

임병안 기자

  • 승인 2025-12-23 17:40

신문게재 2025-12-24 18면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김충일 북-칼럼니스트
세월 참 빠르다. 변동불거(變動不居)의 을사년(乙巳年)도 며칠 있으면 안녕이다. 엊그저께 저녁에는 동지 팥죽을 먹고, 오늘 아침에는 크리스마스이브 뉴스를 접한다. 삶 그 자체인 세월이 빚어내는 빛과 소리 그리고 풋풋한 내음이 주위에 가득하다. 이렇듯 계절의 변화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인생의 선생님이다. 그중 일상생활의 산책 코스인 공원의 숲에서 매양 만나는 겨울나무는 인생 담론의 품 안으로 끌어들이기에 가까운 당신이다. 일상의 겉흙을 걷어내고 당신 속을 들여다 볼일이다.

요즈음 중촌 시민공원의 겨울나무를 바라보면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띈다. 화려한 꽃이나 무성한 잎에 가려졌던 곁가지 껍질마저 벗겨진 나무는 수형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나무의 굵은 줄기나 잔가지 하나하나에는 그 모든 것이 이웃 나무와 햇볕을 경쟁하며 때로는 휘어지고, 때로는 키를 키우며 살아온 지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져 두드러진다. 어쩌면 이것이 겨울나무의 지난한 삶의 서늘하고도 애잔한 마음, 노고 그리고 새 삶의 희비가 어우러진 심미적 풍경이 되는 듯싶다.



그렇게 계절 순환이 일구어내며 움츠러든 나무 가지는 다시 봄을 찾아 소성하고, 푸르른 여름이 연출된다, 비움의 봄은 기어코 연록의 입새들로 초록 충만의 향연을 펼치다가, 무성한 숲을 이루며 급기야 겨울 나목에 이르는 모습 되어 기억 속의 흔적으로 부서지고 부러져 소실된다. 그렇다고 초라하게 움츠린 빈 나무라며 함부로 업신여김으로 대하지는 말자. 비명 같은 소요는 우리네 삶의 어제 모습을 불러보고 훗날 모습을 돌아보고 지금을 견책하며 일깨워 주고 있기에….

숭숭 구멍 뚫린 세월의 비바람 속에서 여름날 생의 자랑이었던 가지의 꽃들아, 잎들아, 열매들아! 이제는 '안일과 나태의 너를 떨구고선 서리 매 맞으며' 벌거숭이 나목 되어 있구나. 이렇듯 겨울나무가 된다는 것은 겉을 버린 속으로의 삶을 사는 것을 이루어냄이다. 연둣빛 초록의 새 꿈의 방향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비워냄'의 흐름 속에서 마지막 마른 잎까지 다 버린다. 이렇듯 겨울나무는 값진 하나를 위해 열을 바쳐야 할 때를 깨우친 '내려놓음의 조율사'된다. 그리하여 '서리 앞에서 뼈 울고 살은 떨려' 견디기 힘든 과정을 넘어선,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나'가 아닌 나 자신만의 헐벗은 '나'를 찾아 지금까지 '나를 나'이게 한다.

벌써 너는 푸석푸석하게 마른 풀들과 흙이 엉겨 붙어 딱딱하게 굳어 버린 땅위에, 이미 끝난 것 같은 시간을 길게 붙들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듯 서 있는 겨울 나무되어 있구나, 아니, 삶에서 혹독한 추위를 만나 겉으로 보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죽은 것이 아닌 지난 초록 계절에 일어난 일에 관한 생각과 감정의 미세한 떨림과 소리, 흔적을 더듬으며 웅크리고 있구나!



이때 '웅크림'은 감상적인 동정으로 포장된 사라짐의 가면이 아니라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격려의 버팀목이다. 다음을 살아낼 준비를 하며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기다림의 시간 형식이 된다. 이렇듯 '씨앗'은 웅크리고 있다가 흙을 만나 싹을 띄우듯 지금 잔뜩 웅크리고 있는 당신은 지금 위축된 게 아니라, 누구보다 깊어지는 중이다. 그러니까 '겨울나무'의 웅크린 시간은 '멈춤'이 아니라 '생명력을 발현하기 위한 응축'의 순간이 된다.

혹시 분주하고 소란한 연말연시를 맞아 마음 정원을 돌보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겨울나무'가 되어 이런저런 욕심을 내려놓고, 자신을 들여다보며 숨을 고르세요. 지금 잔뜩 웅크리며 마음의 정원을 걸으며 내려놓음의 고독한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하여 비워버린 맨몸으로 힘에 겨워 울기에 머뭇거린 '겨울나무'는 "가라, 옛날이여…, 오라 새날이여… 나를 키우는데 모두가 필요한 고마운 시간들이여…"를 알려주는 계절의 큐레이터 되어 다가옵니다. 그리고선 당신은 병오년(丙午年)의 문지방을 건너 새해로 들어섭니다./김충일 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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