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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균 소장 |
그만큼 당대 중국은 강력했고 문화적 자존심도 대단했다. 이런 중국을 대하는 주변국들의 생존방법도 제각기 달랐다. 그런데 존망에 따른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힘으로 대항한 나라들의 말로는 대개 망하거나 중국에 동화됐고, 약함을 인정하고 관계를 평화롭게 설정한 나라들은 독립된 국가로 존립했다는 점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맹자가 제시한 사대(事大), 사소(事小)에 있다. 비록 수직적 질서이기는 하나 상호 사대, 사소로 대하며 싸움대신 평화를 선택한 나라는 조선이 대표적이고, 이를 무시하고 철저히 무력을 사용하다 멸망한 나라는 흉노와 말갈 등 서북쪽의 여러 소수민족이고, 몽고와 만주는 중원을 정복했지만 중국에 동화됐다. 이렇듯 사대는 당시 약소국의 평화적 생존방법이었고, 그로 인한 부담(조공)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선진문물을 접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사대 사소의 명분 속에 경제적 실리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조공무역이란 말도 나왔다. 사대에 따른 조공은 명분이고 강대국의 사소는 생존과 경제적 이득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은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한 중요한 사건이었다. 지는 해인 원나라와의 사대명분을 지키다가 떠오르는 명나라에 등져서 좋을 게 없다는 실리 선택이다. 사대명분으로 중국과 다른 글자 만드는 작업을 집요하게 반대했던 관료신하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판단도 백성들의 실익을 먼저 고려한 선택이었다. 조선후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경우도 명분과 실리가 함께 작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생존을 위협하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는 군대를 보내 조선을 도왔다. 사대 사소관계에 따른 원조라는 명분이 따랐지만, 이면에는 자국보호라는 실리가 작용했다. 당시 일본의 궁극적 목적은 대륙정복에 있었고, 이를 간파한 명나라가 군대를 파견한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라를 구한 조선은 명에 대한 사대의 예를 강화했지만, 중원의 주역은 청나라로 바뀌고 있었다. 조선은 명에 대한 사대의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결국 병자호란을 자초했고, 또 한 번의 치욕을 당했다. 실리보다 명분만 추구하다 벌어진 굴욕사건이다. 비슷한 잘못은 구한말 또 일어났다. 존화양이(尊華攘夷)의 명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쇄국으로 일관하다 결국 자생적 근대화라는 실익을 놓친 일이다.
예나지금이나 국가 간의 관계는 명분과 실익이 늘 따라다닌다. 그런데 명분만 있고 실익이 없다면 명분은 오래가지 못한다. 복잡하고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명분보다 실익이 중심이 되고 있음은 최근 미국의 패권행보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미들파워 반열에 있는 한국의 외교적 선택이 실리에 있어야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외교의 필수가 실리임은 이미 오래전 얘기다. 이웃한 중국과의 관계 속에 근거 없는 허황된 이야기나 잘못된 역사인식이 얼마나 큰 불이익이 되는지를 심각하게 돌아보며 국가적 실익을 생각할 때이다.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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