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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건하 금강유역물관리위원회 제2기 민간위원장 |
지금 우리 앞에는 물과 관련된 뜨거운 과제가 여럿 놓여 있다. 금강의 세종보는 10여 년간 개방과 존치, 재가동이라는 극단적 정책 변동 속에서 표류해왔다.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보 수리·재가동 준비·환경영향 재조사 등에 24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소모되었고, 보 철거를 요구하는 환경단체의 현장 농성이 670일을 넘기고 있다. 수질과 생태를 되살려야 한다는 요구와 농업·생활용수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현실이 공존하는 가운데,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요원하다. 둘째, 지방하천 준설 문제다. 기후위기로 홍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주민의 절박한 안전 요구와 하천 생태계 보전의 가치가 충돌하면서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기후대응댐은 어떠한가. 금강권역만 해도 가뭄 시 연간 2.1억 톤의 물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음에도, 충남 청양 지천댐을 둘러싼 논의에서 보듯 미래 물 부족 대비라는 국가적 필요성과 생태계 보전, 대체 수원 확보라는 요구가 하나의 방향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있다. 사업의 타당성 조사조차 지역 갈등 속에서 난항을 겪는 현실이, 합의 부재의 비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위 세 과제의 공통분모는 명확하다.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합의의 기술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4대강 수계관리기금은 연간 1조원을 넘지만, 그 가운데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조정하고 유역 단위의 합의를 형성하는 거버넌스 비용은 사실상 전무하다. 물을 확보하는 기술에는 수조 원을 투입하면서, 물을 나누는 지혜에는 투자하지 않는 역설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물이 21세기 산업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사실에 있다. 반도체 산업단지는 상당한 양의 공업용수를 필요로 한다. 이는 물 관리가 더 이상 환경 문제에 머물지 않고 국가 산업경쟁력의 핵심 인프라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2034년까지 2.2조 원을 투입해 용수 공급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계획이지만, 물리적 시설투자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류 지역과 하류 지역, 농업용수와 공업용수, 그리고 환경유지 용수 간의 배분 합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리 정교한 인프라도 작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도로는 뚫려 있는데 물을 공급할 합의 하나 만들지 못해 첨단 산업단지 가동이 지연된다면, 그것은 실패한 인프라다. 반도체, 바이오, 이차전지 등 첨단 제조업은 이제 댐 단일 의존이 아닌 댐과 재이용, 담수화, 광역 연결이 통합된 복합 수원 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투표로 권력을 교체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성취했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거버넌스 민주주의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18년 제정된 물관리기본법은 통합물관리와 유역 중심 관리, 이해관계자 참여 보장을 법제화한 전환점이었다. 성숙한 시민사회,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투명성, 그리고 이 법적 기반은 우리가 이미 보유한 거버넌스 자산이다. 문제는 이 자산을 현실의 성과로 전환하는 실행 체계가 아직 미비하다는 데 있다.
물론 변화의 씨앗은 이미 뿌려졌다. 금강유역물관리위원회는 유역 내 물관련 계획의 정합성을 심의하고, 유역 포럼을 통해 현장 과제를 정책 의제로 전환해왔다. 유역물관리위원회가 자문과 조정의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실행 주체로 거듭나야 할 때다. 이를 위해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보의 존폐와 하천 관리에 관한 결정은 철저히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검증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정치적 바람이 아니라 수문·수질·생태 데이터가 정책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둘째, 수계기금 내에 갈등 조정과 합의 형성을 위한 전담 예산을 확보하여, 유역 거버넌스가 예산 없는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현재 수질·기금 중심으로 분리 운영되는 수계관리위원회의 기능을 유역물관리위원회와 통합하고, 통합물부담금에 기반한 유역관리기금을 조성하여 지속가능한 재정 기반을 갖추어야 한다. 이와 함께 물과 에너지, 데이터를 아우르는 스마트 유역관리 체계를 구축하여, AI 기반 녹조 예측이나 실시간 수문 모니터링 같은 기술 혁신이 유역 단위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금강유역물관리위원회는 단순히 물을 나누는 곳이 아니다. 10년 넘게 표류해온 보 논란에 과학의 언어로 선택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대청호의 수질과 금강 하류의 생태를 함께 지키면서, 충청권의 산업 용수 수요와 전북의 농업용수 안정, 그리고 환경 용수의 균형점을 찾아가는 사회적 신뢰의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과학적 합의는 지역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갈등 비용을 줄여 발전을 현실로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번 물의 날에는 물의 양과 질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합의의 질을 함께 성찰하기를 제안한다. 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곧 갈등을 해결하는 일이며, 지역의 미래를 여는 일이다. 물이 막힘없이 흐를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지방시대도 활짝 열릴 것이다. /김건하 금강유역물관리위원회 제2기 민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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