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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거짓말

현옥란 뉴스디지털부 부장

현옥란 기자

현옥란 기자

  • 승인 2026-03-18 09:04

신문게재 2026-03-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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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제뱅크 제공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중동지역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가운데, 온라인상에는 AI로 조작된 가짜 전쟁 영상이 SNS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전쟁 관련 딥페이크 영상들이 최근 들어 봇물 터지듯 쏟아지며, 조회 수 또한 수억 회를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영상들을 보면 단순한 합성 수준을 넘어, 불길의 움직임이나 폭발음까지 정교하게 구현돼 보는 이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쉽사리 인지하기 어렵고, 일각에서는 영상 내용을 기정사실로 여겨 보복을 촉구하는 여론까지 형성하고 있어 문제가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작 또는 왜곡된 정보로 인한 폐해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다. 그때는 현재와 같은 기술이 없었을 뿐, 파급력은 지금 못지않았다. '글라이비츠 방송국 습격 사건'은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구실을 만들기 위해 벌인 자작극인 것이 전쟁이 끝난 후에야 밝혀졌다. 1939년 당시 폴란드군으로 위장한 요원들이 독일 접경지인 글라이비츠 방송국을 습격해 선동 방송을 내보내고, 미리 살해한 수용소 수감자들에게 폴란드 군복을 입혀 '침략의 증거'로 사건 현장에 배치했다. 히틀러는 다음 날 이 사건을 빌미로 폴란드를 침공했으며, 이는 인류 최대의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의 시작점이 됐다.



'이라크 전쟁'도 비슷한 경우다. 9·11 테러 이후인 2003년, 미국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은밀히 제조해 세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이라크를 침공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축출한 사실이 있다. 하지만 전쟁 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조사단'이 샅샅이 뒤졌음에도 실제 사용 가능한 대량살상무기는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수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이 희생됐던 전쟁의 가장 큰 명분이 됐던 대량살상무기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듯 정보 조작과 왜곡은 훗날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이미 발생한 희생과 상처를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위험성이 더욱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딥페이크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초기에는 단순한 합성 장난으로 시작된 것이 기술활용의 문턱이 점차 낮아지고 정교한 합성이 가능해지면서 범죄의 도구로까지 전락하게 된 것이다.

2020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n번방 사건'은 딥페이크가 어떻게 성착취 도구로 악용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이어 발생한 2024년 '서울대 N번방', '겹지방' 사태는 범죄의 대상이 '국민 누구나'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켰다. 딥페이크 성범죄의 증가는 경찰청 통계에서도 알 수 있다. 2023년 180건에 불과했던 딥페이크 성범죄 발생 건수는 2024년 921건을 거쳐 2025년에는 1827건으로 불과 2년 만에 10배 이상 폭증했다.



딥페이크 공포는 교육 현장의 풍경마저 바꿔놨다. 졸업앨범을 만들 때 상당수 학교의 교사들이 자신의 얼굴을 빼거나 스티커 등으로 대체하고 있으며, 학생들 또한 앨범 촬영 희망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사제간 추억과 친구들과의 우정을 기록한 소중한 사진들이 '언제 범죄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의 대상이 된 것이다.

다가오는 선거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후보자의 발언을 조작하거나 있지도 않은 사건을 담아낸 가짜 영상이 확산되면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거나 판세를 뒤흔들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중앙선관위 자료를 보면 선거 기간 딥페이크 영상 삭제 요청 건수가 2024년 제22대 총선 당시 388건에서 2025년 대통령선거에서는 1만510건으로 크게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AI 기술의 급격한 발달은 우리에게 편리함을 주고 있지만, 동시에 진실을 뿌리째 흔드는 '딥페이크'라는 재앙도 함께 불러왔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며 무엇이 사실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조작된 콘텐츠들이 국가 간의 전쟁을 부추기고, 사회를 혼돈에 빠트리고, 개인의 삶까지 위협하는 무기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정부와 기업 등이 탐지기술 개발과 처벌기준을 강화 등 여러 가지 대응방안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전히 문제는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기술은 사용자가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정교해진 거짓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 디지털 윤리 의식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다. 앞으로도 기술은 멈추지 않고 발전할 것이다. 기술이 삶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는 도구가 될지 '디지털 흉기'가 될지는 결국 사람의 선택에 달렸다.

현옥란 뉴스디지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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