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 소장 |
죽음 준비 공부는 내 곁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사유의 폭을 넓혀주었다. 육신의 유한함에 대해, 삶의 흔적을 남기는 이름값에 대해, 용서와 화해에 대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유언장 작성 등 구체적인 교육을 들은 시간은 나를 돌보며 사는 방법에 대한 귀중한 탐구의 시간이 되어주었다. 몸과 마음을 돌보는 삶, 웰다잉에 대한 개념은 자연스럽게 내 삶을 어떻게 다듬어갈까 하는 진지한 질문으로 다가왔다.
어느새 이곳저곳 목련꽃 망울을 톡톡 터뜨리는 봄이 왔다. 우윳빛 살결 뽀얀 봄 처녀 같은 목련의 계절이다. 봄이 오고 메마른 가지에 새순이 돋을 때 우리는 탄성을 지르며 새로운 시작을 기뻐한다. 문득 살면서 이 고운 봄날을 얼마나 더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숫자로 세는 것조차 떨려온다. 백 세 시대라 한들 얼마나 더 많은 봄 햇살에 이 마음 뜨거워지려나, 불현듯 봄빛이 찰나로 흘러간다. 이 봄날을 어떻게 더 즐거워할까,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두 눈에 담을 수밖에.
요즘 주말이면 어김없이 친정엄마를 돌보러 가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어느 해인가 집에 연로하신 부모님이 계시면 요양보호사 자격을 얼른 따두라고, 가족요양을 할 수 있어서 요긴하게 쓰일 것이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때 팔순이 지난 엄마가 계시니 혹시 따 두면 쓰임새가 있으려나 싶어서 자격증을 취득했다.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쓰게 될 줄은 까맣게 모르고 말이다. 가족요양은 무엇보다도 부모님을 챙길 수 있는 점에서 아주 훌륭한 제도라고 여겨진다. 몸이 다가가야 효도도 실행이 되기 때문이다.
친정엄마는 팔십 중반에 더럭 위암이 찾아온 뒤부터 온갖 병치레를 달고 사신다. 뇌경색에 경동맥 스탠트며 담석에 고생을 하시더니 기력이 뚝 떨어지셨다. 결국 주중에는 요양보호사가, 주말에는 가족요양을 하는 노후 돌봄생활이 시작됐다. 주중에는 딸보다 더 살가운 요양보호사가, 주말이면 꽃 본 듯이 모녀 상봉이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의 마음은 늘 봄날이건만 점점 봄은 풍경 저 너머로 멀어진다. 구십 세를 지나가는 엄마의 노화를 지켜보면서 어렴풋이 내게도 다가올 '늙음'의 시간에 대해 미리 예견해 본다.
90세 아버지가 70세 아들에게 길조심 차조심 걱정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은 적이 있는데 그게 남의 얘기가 아니다. 매주 엄마 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밥은 먹었니?", "추운데 옷을 왜 그렇게 입고 다니냐" 채근이시다. 시도 때도 없다. 하루는 길고도 바쁘나 일주일은 순식간에 돌아오고 우물쭈물 일 년이 지나간다. 우리 엄마의 봄은 얼마나 더 돌아올 것인가 생각하면 이 봄이 더욱 애틋하다. 꽃이 아름다운 건 순간에 지기 때문이고, 인생이 소중한 것은 언젠가는 떠나기 때문이라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을 모든 순간이 인생의 봄 같기만 하다.
웰다잉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먼저 죽음을 떠올린다. 그러나 웰다잉은 죽음 준비라는 무거운 주제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려는 존엄한 삶의 태도를 포함한다. 꽃들이 후회 없이 제자리에 피었다 지듯 사람도 후회 없이 살다가 언젠가는 본향으로 돌아가는 생의 순환 앞에 서게 된다. 그렇게 인생을 잘 걸어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후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삶을 지향하는 것이 웰다잉의 본연이다. 나는 잘하고 있나, 잘 익어가야 할 텐데, 거울 보듯 마음을 닦아본다.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 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