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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성 교수 |
필자는 AI가 본격적으로 확산 되기 이전에 박사 학위를 받은 세대다. 소위 '라떼 시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글쓰기 훈련이 지금의 연구 역량과 논리적 사고력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논문이라는 것은 단순히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행위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깊은 고민을 거쳐 자신만의 논거를 구축하고, 이를 설득력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수 없는 고민 속에 논리적인 허점을 발견하고, 더 좋은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연구자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AI의 등장으로 이러한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생성형 AI는 몇 분 만에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논문의 구조까지 빠르게 잡아준다. 실제 많은 연구자는 알게 모르게 AI로 초고를 작성하고, 큰 고민 없이 이를 다듬어 제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논문 지도를 하는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빈번히 목격하게 된다. 학생들이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본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AI가 생성한 텍스트의 논리적 허점이나 어색한 표현을 걸러내지 못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부 과정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서울대 학생의 97%가 학업에 AI를 활용한다는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AI를 활용한 과제 수행은 이미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과제의 내용을 깊이 사고하기보다는 단순히 복사하여 붙여넣기 수준으로 과제를 처리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MIT에서 발표된 연구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AI를 활용해 에세이를 작성한 그룹은 자신이 쓴 내용을 상당 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 AI가 글쓰기의 효율성은 높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이로 인한 학습 효과는 저하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은 지역 대학에 더 심각한 고민과 과제를 던져준다. 매년 지역 대학에서 배출되는 수많은 석·박사 연구자들이 AI에 의존한 채 학위를 취득한다면, 이들이 아무 자료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여러 논거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설득력 있는 글을 써낼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쪽이다. 연구자의 본질적 역량은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편집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논리를 구축하며 이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이 기본 역량이 흔들린다면, 우리가 양성하는 연구 인력의 질적 수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AI라는 시대적 흐름에 거스를 수는 없다. AI를 무조건 배제하자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하되, 연구자로서의 핵심 역량을 잃지 않는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원 교육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중 필자가 제안하는 방식은 논문 평가의 초점을 '결과물'에서 '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성된 논문만을 평가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AI 활용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 연구 주제 선정부터 자료 수집, 분석, 집필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트폴리오 형태로 기록하고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
더하여 이들의 글쓰기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실제 AI 없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교육이 대학원 교육의 필수 과정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이미 AI가 논문을 구상하고 써주기까지 하는 시대는 도래했다. 그러나 논문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사고력과 표현력에 있다. AI는 연구를 돕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연구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 지역 대학에서 배출되는 연구자들이 AI 시대에도 진정한 연구 역량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려면, 지금이 바로 글쓰기 교육과 연구 훈련의 패러다임을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김용성 충남대 사범대학 기술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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