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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보기]왜 우리의 첫 번째 포기는 ‘수학’이어야 하는가

양홍석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장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26-05-21 16:51

신문게재 2026-05-2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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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홍석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장
필자는 학창 시절, 이른바 수학포기자('수포자') 중 한 사람이었다. 구구단으로 기초를 다지던 초등학교 시절까지는 수학 성적이 괜찮았다. 그런데 중학교 1학년에 들어서면서 나의 수학은 계절로 설명되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봄은 희망의 계절이었다. 집합과 행렬, 1차 방정식까지는 개념이 쉽게 이해되고 문제도 풀렸다. 하지만 5월이 지나면서 분위기는 급변한다. 2차 방정식과 수열, 함수, 극한이 등장하자 이해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한숨이 늘어난다. 여름에 접어들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장마처럼 삼각함수와 지수·로그의 폭우가 몰아친다. 결국 수업의 흐름을 놓쳐버린다. 그렇게 가을에는 미적분이라는 냉혹한 겨울의 문턱 앞에서 책을 덮게 되고, 이후 확률과 통계는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지나간다. 시험은 늘 1~2번 문제 이후부터 '확률 25%'의 찍기에 의존하게 된다.

과외도 소용없었던 나의 '수포자의 1년'은 6년, 아니 재수를 포함해 10년 가까이 반복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결코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적지 않은 청소년들이 수학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한다. 왜 우리에게 수학(數學)은 배움(修學)의 도구가 아니라, 인생에서 처음으로 포기를 상징하는 학문이 되어버렸을까.

이유는 분명하다. 수학은 정직하다. 앞 단계를 건너뛴 다음 페이지를 허락하지 않는 철저한 누적형 학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방정식과 함수 등 기초가 형성되는 중학교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고등학교 수업은 사실상 따라가기 어렵다. 이런 실패 경험이 반복되면서 학생들은 수학 때문에 '나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스스로에게 찍는다. 더 큰 문제는 교실과 학원에서 배우는 수학이 '왜 배워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개념 설명과 문제 풀이만 있을 뿐,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시험에 자주 나오는 공식을 외워야 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문제와 정답을 외운다. 그래도 안 되면 결국 포기하게 된다.

그렇다면 수학은 오로지 대학 입학을 위한 학문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수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 깊숙이 스며 있다. 스마트폰을 예로 들어보자. 사진을 찍는 순간 렌즈는 빛의 각도를 계산하고, 센서는 그 빛을 숫자로 변환한다. 한 장의 사진은 수많은 숫자의 배열, 즉 '행렬'로 저장된다. 문자를 입력할 때 단어를 추천하거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보여주고, 주식이나 대출 정보를 예측하는 기능은 확률과 통계에 기반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주식시장의 추이는 미분과 적분이 적용되고, 건축에서는 기울기와 부피 계산에 기하와 방정식이 활용된다. 업무에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엑셀 역시 함수 개념 없이는 제대로 다루기 어렵다. 이처럼 수학은 숫자로 세상을 설명하는 언어이자, 현실을 작동시키는 실용적 도구다.



하지만 교육 현장은 이러한 실용성을 아직 체감하지 못한다. 가장 큰 원인은 고질적인 서열 중심의 평가 구조에 있다. 수학은 변별력을 만들기 가장 쉬운 과목이다. 명확한 정답과 난이도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효율성 뒤에는 수많은 '수포자'가 존재한다. 수학능력시험에서 논란을 불러온 일부 고난도 문제들은 우리가 수학자를 양성하는 것인지, 문제 풀이 기계를 만들어내는 것인지 의문을 낳는다.

수포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과열된 입시 경쟁 속에서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이다. 가장 논리적이고 흥미로운 학문인 수학이 왜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하는 과목이 되었을까. 이제 그 책임을 학생이 아니라 낡은 교육 시스템에 물어야 한다. 수학은 더 선명한 사진을 만들고, 맞춤형 정보를 추천하며,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키는 디지털 기술의 기반이다. 수학이 두려움의 언어가 아니라 삶의 언어로 다가오는 날, 우리 아이들은 비로소 수학을 알게 될 것이다.
양홍석 대전시청자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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