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과학
  • 지역경제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대전이란 도시의 탄생과 역사를 함께 한 지역 곳곳의 골목들
자생적 BM 발굴로, 골목을 새로 디자인 해 청년세대 유입시켜야

심효준 기자

심효준 기자

  • 승인 2026-06-22 17:30

신문게재 2026-06-23 7면

대전의 정체성을 담은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와 정동 인쇄거리 등 전통산업 특화거리들이 산업 구조의 변화와 종사자 고령화로 인해 심각한 존폐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기존의 외형적 도시재생 사업은 실질적인 판로 개척에 한계를 보이고 있어, 장인의 정교한 기술과 청년 세대의 감각을 결합해 시장 경쟁력을 갖춘 자생적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이에 지역사회는 일본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전통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고, 100년을 내다보는 '대전 특화거리 전통산업 리빌딩'을 통해 지역 고유의 자산을 미래 세대에 계승하고자 합니다.

대전 중구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와 정동 인쇄거리, 원동 한복거리 등 과거 대전을 상징하던 유서 깊은 산업 자산들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붙여진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와 유통 시스템 현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간 채 존폐의 기로에 서면서다.

'생산의 효율화'란 거대한 산업 발전 흐름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숨결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산업의 흔적이 미래세대에 적절히 계승돼야 마땅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낡은 산업의 미래를 새로 디자인할 수 있도록, 장인의 정교한 기술에 청년의 대담한 감각을 이식해 자생적 비즈니스 모델을 창조할 새로운 산업 철학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에 중도일보는 '지속가능성'을 바탕으로 지역 전통산업 부활 공식을 새롭게 증명해 낸 일본의 주요 도시와 산업 현장들을 직접 둘러보고, 그들의 경영 철학과 청년 세대로의 승계 모델을 우리의 산업에 접목할 방안을 지역사회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100년을 바라보는 미래 산업을 향한 '대전 특화거리 전통산업 리빌딩' 프로젝트를 위해 새로운 대안을 전문가들과 함께 모색해 본다. <편집자 주>





① 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일본 출판업계와 기모노 장인의 비책

③ '문화재적 가치를 보존하다'…일본 교토 니시진오리의 전통 계승 노력



④ 한-일 청년 세대 교류의 장을 열어 더 넓은 시장을 꿈꾸다

⑤ '발전 의지에 방점을'…산업 지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다

KakaoTalk_20260621_085646253
대전 중구 중촌동 일원에 위치한 맞춤패션거리.(사진=심효준 기자)
"사장님, 지난번에 맞춰간 바지가 아주 딱 맞더라고요. 이번엔 가을에 입을 재킷 좀 보러 왔어요."

대전 중구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에 들어서자, 오래된 양복점 문틈 사이로 손님을 맞이하는 상점 주인의 넉살 좋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매장 안쪽에서는 수십 년간 거친 원단을 만져 지문이 닳아버린 장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줄자를 목에 걸친 채 돋보기안경 너머로 손님의 체형을 날카롭게 훑고, 이내 커다란 재단 가위로 서슴없이 원단을 사각사각 잘라낸다. 골목 뒤편 공방에서는 '드르륵, 드르륵' 둔탁하면서도 규칙적인 재봉틀 소리가 거리를 채우며 살아있는 맥박을 만들어낸다.

원동 중앙시장 한복거리의 풍경도 닮아있다. 혼수를 맞추기 위해 어머니의 손을 잡고 수줍게 들어선 예비신부의 손등 위로, 상인이 펼쳐 보이는 오색빛깔 원단이 은은하게 물결친다.

이처럼 과거 대전의 성장을 견인하고 원도심의 경제 혈맥을 담당했던 이 전통 산업의 골목들이 현재는, 거대한 적막감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한때 밤낮없이 불을 밝히며 사람과 돈이 몰려들던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오늘날 이곳에서 마주하는 역동적인 풍경은 '일부 장인'들의 눈물겨운 분투일 뿐, 거리 전체는 굳게 닫힌 셔터와 빛바랜 간판이 더 많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대전의 영혼이자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해 온 전통산업 자산들이 지난 수십 년간의 번영을 뒤로한 채, 디지털 대전환과 유통 구조의 격변 속에서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대전의 맥박을 뛰게 한 주역들

이들 특화거리 역사는 곧 대전이라는 도시의 탄생과 발전사에 궤를 같이한다.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교통과 행정의 중심지로 급부상한 대전은 필연적으로 수많은 정보와 물자가 모이는 대도시로 성장했다.

정동 일대에 형성된 인쇄거리는 대전이 충남도청을 유치하고 영남과 호남을 잇는 거점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잉크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관공서의 행정 문서, 학교의 교과서와 유인물, 그리고 영호남을 아우르는 문중들의 족보 인쇄 물량이 대전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전 인쇄거리는 대구, 서울과 함께 '전국 3대 인쇄거리'로 명성을 떨치며 대전 원도심 경제의 거대한 엔진 역할을 해냈다.

원동 한복거리 역시 대전 교통망의 수혜를 톡톡히 입은 공간이다. 대전역 인근 중앙시장을 중심으로 터를 잡은 한복거리에는 충청도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혼수를 맞추려는 발길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중촌동의 맞춤패션거리 또한 기성복이 귀하던 시절, 자신만의 옷을 지어 입으려는 멋쟁이들과 신사·숙녀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며 대한민국 패션의 한 축을 담당했던 자부심의 공간이다. 이 거리들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대전 시민들의 삶과 애환, 그리고 장인정신이 켜켜이 쌓인 문화적 요람이었다.

2024101401000848300034391 (1)
대전 동구 정동 일원에 위치한 인쇄특화거리.(사진=중도일보DB)
▲'생산의 효율화'라는 거대한 해일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풍요의 계절은 서서히,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속도로 저물어 갔다. 이들을 위기로 몰아넣은 것은 거대한 '패러다임 변화'였다.

현대 사회를 관통한 '생산의 효율화'와 '대량생산 체제'는 전통적인 숙련 기술의 가치를 빠르게 잠식했다. 맞춤패션거리와 한복거리는 대기업 중심의 대형 기성복 브랜드와 패스트 패션(SPA)의 공습, 그리고 결혼 문화 간소화라는 사회적 직격탄을 맞았다.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이 며칠 밤을 새워 정성껏 지어내는 옷의 가치보다, 클릭 몇 번으로 다음 날 아침 배송되는 저렴하고 규격화된 옷의 편리함이 시장의 선택을 받으면서 골목의 수요는 급감했다.

인쇄거리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디지털 가속화로 인해 '종이 없는 사회'가 현실화되고, 고도화된 대형 인쇄 시설을 갖춘 수도권 대형 업체들로 물량이 집중되면서 영세한 대전의 인쇄소들은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오랜 시간 거리를 지켜온 장인들의 노령화와 청년 유입 단절이라는 고질적인 문제가 겹쳤다. 기술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없는 골목은 급격하게 활력을 잃었고, 특화거리는 점차 활기를 잃어 고령화의 늪으로 스스로 고립되어 갔다.

지역 상권과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1970년대부터 맞춤복을 제작하는 의상실이 모여 형성된 '중촌동 맞춤패션 특화거리'는 전성기 시절 약 100곳의 점포가 몰려있었으나 현재는 40곳 내외 수준으로 감소했다. 대전 동구 정동·중동에 위치한 '인쇄 특화거리'와 '한의약 특화거리'는 과거 전성기 시절 대비 현재의 점포 수는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진다. 동구 원동에 위치한 한복거리도 과거 중앙시장 전체에 90여 곳의 점포가 있었으나 현재는 단 20~30곳만이 영업을 유지 중이다.

캡처
대전 동구 원동 일원에 위치한 한복거리.(사진=대전 동구 제공)
▲'박제'냐 '소멸'이냐, 기로에 선 현장

현재 대전의 특화거리들이 마주한 현실은 가혹하다. 현장에서 만난 40년 경력의 한 인쇄소 대표 A씨는 긴 한숨을 내쉬며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하루 종일 큰 소득 없이 문을 닫는 날도 있어요. 예전에는 골목이 좁을 정도로 종이 구루마가 많이 다녔는데, 이제는 임대 문의 현수막이 점차 늘어가고 있죠. 정부나 지자체에서 지원 사업을 늘리는 듯 하지만, 일회성 행사가 끝나면 골목은 다시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중촌동에서 맞춤 디자인 점포를 운영하는 한 장인은 골목의 세대 단절을 가장 큰 위기로 꼽았다.

이현주 중촌동 맞춤거리 상점가 대외본부장은 "지금 특화거리의 상인들은 대다수가 은퇴를 앞둔 고령층이다"라며 "그러나 당장 우리의 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가 없다. 우리 세대가 문을 닫으면 대전의 맞춤옷 역사도 그대로 끝나는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청년들에게 기술과 산업을 물려주고 싶어도 적절한 매개체가 부족하다. 기존 상인들과 젊은 세대가 함께 교류하고 시너지를 낼 환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지자체 차원의 도시재생 사업이나 특화거리 지원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지원은 주로 도로를 포장하고, 조형물을 설치하는 등 외형적 구조를 바꾸는 하드웨어 중심에 머물렀다. 정작 상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새로운 먹거리(비즈니스 모델)' 창출이나 '판로 개척' 같은 내실 있는 소프트웨어 지원은 겉돌았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대전의 전통산업 거리는 박물관 전시품처럼 명맥만 유지하다 소멸하는 '박제화'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100년 미래 산업 리빌딩을 도모해야 하는 이유

대량생산과 효율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사양 산업을 굳이 붙잡아야 하는 것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특화거리로 지정된 전통 산업 거리가 품고 있는 장인의 기술과 골목의 역사는 단순한 경제적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대전의 '정체성이자 독창적 자산(Heritage)'이다. 이 자산들이 무너진다면 대전은 역사와 문화적 색채를 잃어버린, 어디나 똑같은 콘크리트 회색 도시로 전락하고 만다.

우리가 이 골목들의 미래를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는 과거의 방식을 고집하는 무조건적인 보존이나, 실효성 없는 일회성 예산 퍼주기 식 행정에서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장인이 평생을 바쳐 축적해 온 '아날로그 기술'에 트렌드를 읽어내는 청년들의 '감각과 아이디어'를 이식해, 시장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자생적 비즈니스 모델(BM)을 구축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신희권 충남대 도시·자치융합학과 교수는 "지역의 전통산업과 그 명맥이 곧 지역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면서도 "그러나 자구책 마련 없이 과거에 머무르는 산업에 대한 막연한 예산 지원은 큰 효과를 보기 힘들 수 있다. 변화하는 수요에 걸맞게 올바른 변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원기·심효준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