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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순(한남대학교 산학연구처 교수) |
맛있게 점심 식사를 마치고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화장실 변기 한켠을 여러 개의 박스가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쩌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기본적인 생리적 권리를 침해받았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혈기가 솟구쳤다. 일단 화를 가라앉히고 담당 직원선생님께 연락을 드리고 나서 상황은 일단락되었지만,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첫째는 차별에 대한 생각이다. 만약 이곳이 비장애인이 사용하는 일반 화장실이었다면, 과연 이렇게 대놓고 짐을 쌓아두는 창고처럼 쓸 수 있었을까?
둘째는 인권에 대한 문제이다. 만약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당장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순간이었다면 어땠을까. 이는 분명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생리적 권리를 침해하는 심각한 사안이다.
셋째는 비장애인 중심 사회의 몰상식함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 곳곳을 다니다 보면, 아예 관리가 되지 않아 이용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곤 한다.
작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장애당사자인 국회의원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오줌권에 대해 질의하며, 이는 차별 없이 화장실을 이용할 권리를 의미한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화장실은 장애인의 사회적 접근권을 심각하게 약화시키는 대표적인 장소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유니버설 디자인이나 장애인 편의시설의 설치 규격에만 초점을 맞추었을 뿐, 설치 이후의 유지·관리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읽은 장애당사자로서 특수학교 교사가 쓴 글이 떠오른다. 그녀는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강연장이 있는 건물 화장실 상태를 먼저 확인한다고 한다. 이용이 불가능한 화장실인 경우, 비어 있는 달력을 보면서도 강의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외출이 결정된 날에는 전날 저녁부터 수분 섭취를 중단하고, 장의 활동을 강제로 멈추는 약까지 복용한다고 했다. 그녀가 강연장에서 쏟아내는 열정적인 강의는 어찌 보면 전날부터 방광과 장의 고통을 견뎌낸 인고의 결과물인 셈이다. 화장실을 근심을 털어내는 곳이라는 뜻의 해우소(解憂所)라 부르기도 하는데 장애인들에게 화장실은 어쩌면 근심을 안겨주는 증우소(增憂所)가 된 꼴이다.
몇 해 전, 내가 우리 대학의 장애학생지원센터장을 맡고 있을 때, 휠체어를 타는 한 여성분이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나를 만나기 위해 혼자서 씩씩하게 작은 선물까지 들고 찾아온 그 분과 커피를 마시던 중, 화장실 안내를 부탁했다. 다행히 학생회관 건물이라 장애인 화장실로 안내했으나, 화장실에 들어갔던 그 분은 이내 당황한 기색으로 나오며 변기에 등받이가 없어 볼일을 볼 수 없다고 수줍게 이야기 했다. 결국 인근 사무실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문제를 해결하긴 했지만, 그때 그 분이 느꼈을 수치심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타인의 도움 없이 대등하게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그 분의 자존심이, 어처구니없게도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무너져 내린 것이다.
오줌권은 우리 사회 인권의 가장 하위에 있는, 그러나 가장 필수적인 권리이다. 화장실 문제로 인해 장애인의 이동권이 제한되거나 사회적 활동이 제약받는 일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편의시설을 법적 기준에 맞춰 설치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는 설치를 넘어 그것이 본래의 목적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와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박경순(한남대학교 산학연구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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