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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이순(耳順)에 서서 예순의 문턱에서 쓰는 자서(自序)

한대희/칼럼니스트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6-07-05 16:35
한대희
한대희
살다 보니 어느덧 귀가 순해지는 나이, 이순(耳順)이 되었다. 공자는 예순이 되어 비로소 어떤 말을 들어도 거슬리지 않고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였다. 모든 말을 객관적으로 듣고 그 너머의 의미까지 헤아릴 수 있다는 나이, 그 문턱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조용히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하여 살아왔는가? 그리고 이제,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가?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지나고 이순이 되고 보니, 앞으로 나의 삶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함께 이는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두 감정이 하나의 가슴 안에 공존하는 이 묘한 감각이야말로 예순이라는 나이가 가진 특별한 온도일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어쩌다 보니'의 연속이었다. 어쩌다 보니 그것이 연애였고, 어쩌다 보니 그것이 결혼이었으며, 어쩌다 보니 그것이 부모가 되는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학부형이 되어 자녀와 함께 세상을 살아나가는 법을 공부하고, 배우고, 익혔다. 어쩌다 보니 직장인이 되었고, 어쩌다 보니 기업인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뜻하지 않은 장애까지 겪게 되었지만,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오늘 이 자리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것이 단순히 '어쩌다 보니'가 아니었음을 안다. 돌아보면 그 수많은 우연처럼 보이던 순간들이 사실은 치열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부모가 되는 일도, 실패와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일도 모두 그 순간순간마다 내가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기 위하여 수많은 고난과 고초, 그리고 찬란한 행복의 순간들이 있었던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건넬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차오른다.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자부하면서도, 동시에 아직도 듣고 배우고 익혀야 할 것들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라는 말을 듣는 것, 그것이 지난 육십 년의 가장 큰 훈장이 아닐까 싶다.



공자가 지천명을 이야기하고 이순을 이야기한 것은 분명하다. 내가 공자가 될 수는 없지만, 이순의 나이에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입을 닫고 지갑을 열어라"는 말이 있듯이, 말하는 입보다 듣는 귀로 세상을 받아들이고, 들었으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듣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진정한 이순이 아니다. 귀가 열리면 발도 함께 움직여야 한다.

하늘이 내게 부여한 길과 의미를 깨달았으니, 이제는 깊은 자각과 반성으로 나를 올바로 세워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고통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고요히 가늠하는 성숙한 자기 이해의 작업이다. 예순의 나이가 된다는 것은 쇠락이 아니라 깊어짐이다. 나무가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릴수록 더 큰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예순의 삶은 그 깊이로 세상을 견디는 나이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가? 삶을 지탱하는 근본은 무엇인가? 직책이나 성취로 채워지지 않는 삶이 있다. 명함이 바뀌어도, 직위가 높아져도, 통장 잔고가 늘어나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가 있다. 그 허기는 오직 타인의 삶을 돌아볼 때,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기여할 때 비로소 채워진다는 것을 예순이 되어서야 온전히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한 삶을 살기보다 타인의 삶을 돌아보는 자세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대동세상(大同世上)을 꿈꾸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이 나이에 새롭게 발견한 삶의 이유다.



모두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자세로 예순의 나이를 슬기롭게 건너, 일흔의 나이에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맞이하고 싶다. 어쩌다 보니 칠십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칠십이라는 숫자 앞에서 당당한 나의 모습을 스스로 기대한다. 지나온 세월보다 앞으로 살아나갈 세월의 무게를 당당히 견뎌낼 때에만, 일흔이 되어서도 후회 없는 인생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명(命)을 스스로 찾고, 정성과 성실을 근본으로 삼아 살아가고 싶다. 억지로 일구어 내는 삶이 아니라, 천지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 자유로운 삶. 강물이 바위를 만나도 돌아서 흐르듯, 막히면 돌아가고 낮은 곳으로 임하며 결국 바다에 이르는 그런 삶을 꿈꾼다.

예순의 봄날, 나는 오늘도 그 꿈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는다.

한대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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