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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단재도 서포도 백호도…대전만 낯선 지역의 인문자산

③ 충청 연고 문인도 낯선 대전, 문학유산 관리 체계 빈틈
남해는 김만중문학관·구운몽길 조성, 대전은 관광벨트 논의도 멈춰
신채호 생가는 복원됐지만 활용은 미흡, 윤휴 기념공간도 아직 없어

최화진 기자

최화진 기자

  • 승인 2026-07-19 16:43

신문게재 2026-07-20 2면

대전은 신채호, 김만중, 윤휴 등 저명한 문인들의 흔적이 남은 문학적 요충지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적 지원 부족과 관리 소홀로 인해 소중한 유산들이 시민들에게 외면받고 있습니다.

타 지자체가 연고 문인을 지역 대표 자산으로 육성하는 것과 달리 대전은 체계적인 보존 및 활용 방안이 미비하여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역 문단은 대전의 문학 유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의 적극적인 인식 전환과 실질적인 선양 사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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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어남동에 복원해 놓은 단재 신채호 생가./사진=최화진 기자
도시의 기억은 결국 사람과 장소에 남는다. 대전에도 지역 문학사의 흐름을 이어온 문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정작 그 자취는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채 멀어지고 있다. 묘역은 찾기 어렵고, 생가는 사라졌으며, 지역의 문학적 자산을 기리려는 노력은 행정의 체계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본보는 '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기획을 통해 대전 문학유산 보존의 현주소와 지역 문화 행정의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르포] 산길 끝 김호연재 묘역, 문학관 논의도 길 잃었다

② 주차장이 된 박용래 집터…오룡역 병기만 남은 기억의 과제



③ 충청 연고 문인도 낯선 대전, 문학유산 관리 체계 빈틈

④ 사라진 뒤엔 늦는다…대전 문학유산 이제는 체계 세워야



단재 신채호가 대전에서 태어났고, 서포 김만중과 백호 윤휴를 잇는 흔적도 대전 곳곳에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의 지연 연고는 정작 대전시민들에겐 생경한 것이 사실이다. 지역사회와 행정당국의 관심이 부족한 탓인데 인식전환이 시급하다.

단재 신채호는 1880년 대전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나 여덟 살까지 이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독립운동가와 역사학자로 널리 알려졌지만, '용과 용의 대격전', '꿈하늘'과 같은 역사소설을 쓰며 시와 평론을 남긴 문학가이기도 했다.

현재 어남동에는 주민 고증을 토대로 복원한 생가와 동상, 유허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생가지는 대전시 기념물로 지정됐고, 시는 1990년대 성역화 사업도 추진했다.

단재의 문학적 면모를 조명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지난 2023년에는 '단재 신채호와 대전문학'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고, 당시 제2대전문학관의 핵심 콘텐츠로 단재를 활용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하지만 단재를 기리는 중심은 오히려 청주에 형성돼 있다. 청주에는 단재의 사당과 기념관, 묘소, 교육관이 조성돼 있고 기념사업회도 활동하고 있다. 반면, 출생지인 대전은 복원된 생가와 홍보관 수준에 머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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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문화유산자료 48호 서포 김만중 영정.
출생지와 생가가 분명한 단재조차 낯선데, 서포 김만중에 대한 대전의 관심은 더욱 희미하다.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으로 잘 알려진 김만중은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로 피란하던 배 위에서 유복자로 태어나 별도의 생가가 없다.

그럼에도 지역 문단이 대전을 서포의 '정신적 고향'으로 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만중은 배 위에서 태어나 서울 외가에서 자랐지만, 그의 정신적 뿌리는 당대 명문가였던 광산 김씨 본가인 대전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유성구 전민동에는 선대의 묘역이 자리하고 있으며, 인근에는 김만중의 석상과 효행숭모비, 유배지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쓴 시 '사친'을 새긴 문학비가 있다. 대전시립박물관에는 그의 초상화와 편지, 호패 등 관련 유물도 보관돼 있는 등 서포 삶의 정신적 토대를 보여주는 흔적이 대전에 집중돼 있는 셈이다.

실제로 2015년에는 대전을 포함해 그가 묻혀 있는 DMZ와 유배지인 경남 남해를 잇는 '구운몽 문학평화관광벨트'가 검토됐다. 대전도 거점도시 선점을 위한 정책개발토론회 등을 열었지만, 논의는 별다른 성과 없이 멈췄다.

반면, 남해는 유배지라는 인연을 바탕으로 김만중문학관과 서포초옥, 구운몽길 등을 조성해 그를 지역 대표 문학자원으로 키웠다. 생가조차 없는 인물의 짧은 유배 흔적을 지역 자산으로 만든 것이다.

이처럼 다른 지역은 작은 인연도 지역 자산으로 키우는 사이, 이미 많은 유산을 가지고 있는 대전은 느긋하기만 한 모습에 지역 문단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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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사정동에 위치한 백호 윤휴의 묘./사진=최화진 기자
단재와 서포에 비해 백호 윤휴는 시민들에게 더욱 낯선 인물이다. 조선 후기 개혁사상가이자 학자로 꼽히는 그는 대전 중구 유천동(당시 공주 유천)에 7년간 머물며 학문 활동을 이어갔고, 현재 묘소도 중구 사정동 남원 윤씨 선영에 남아있다.

윤휴의 문학적 재능은 당대에도 높이 평가됐다. 젊은 시절 우암 송시열이 그의 글을 읽고"30년간 나의 독서가 참으로 가소롭다"고 탄식했을 정도다. 단재 신채호도 여순감옥(旅順監獄) 수감 중에 요청한 책 3권 중 하나로 윤휴의 '백호문집'을 꼽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최근 지역에서도 윤휴를 재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2020년대에 들어 산성마을신문을 중심으로 묘지 이정표 설치와 추모제, 공부모임, 답사 프로그램 등이 진행됐고, 지난해 학술대회에 이어 올해는 시의회 정책토론회도 열렸다. 윤휴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후손은 기념공간이 마련되면 자료를 기증하겠다는 뜻도 밝힌 상태다.

지역 문단은 이 같은 노력이 시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의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본다.

백호윤휴선생추모제추진위원회 관계자는 "백호 윤휴 선생을 비롯 지역의 문인들과 그 유산은 지역의 중요한 역사문화자산"이라며 "대전의 인물들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접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선양과 활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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