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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읽기] 제21장-무수동 산신제와 토제마-제1부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6-07-22 13:52

전통 신앙에서 마을은 신성과 세속이 맞닿는 보호의 공간이며, 무수동 국사봉 유적은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공동체의 안녕을 위해 산신제를 지내온 성소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이곳에서 출토된 토제마는 산신이 타고 마을을 살피며 액운을 막아주길 기원하는 정성이 담긴 제물로, 군사적 요충지이자 제의 공간이었던 산성 등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특히 목이나 다리가 훼손된 상태로 발견되는 토제마는 신의 세계로 떠난 말이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적인 제사 의례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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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중구 무수동 국사봉 유적 사진=한소민 소장
전통 신앙에서 마을은 단순한 생활공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성과 세속이 맞닿는 경계이자 예측할 수 없는 혼돈으로부터 보호받는 우주의 중심이었지요. 선조들은 이러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상·하당(上·下堂)의 신앙을 형성했습니다. 뒷산 높은 곳에는 산신을 모시는 상당을 두고, 마을 앞 어귀에는 여러 비보물(裨補物)을 세워 하당을 이루었지요. 위로는 산신이 마을을 굽어살피고, 아래에서는 장승과 돌탑, 수호목이나 솟대가 외부의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고 믿었기에 주민들은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이어져 온 마을신앙. 오늘은 산디마을 탑제와 산내 디딜방아뱅이에 이어 무수동 산신제를 살펴보려 합니다.

무수동 산신제의 중심에는 국사봉이 있습니다. 옛날 국사(國師)라는 도승이 봉우리에 올라 지세를 살펴보고는 그 형국이 너무나 아름답고 길하다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지요. 지금은 허물어진 석축만 남아 있지만 이곳은 한때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올리고, 해마다 정성껏 산신제를 모시던 신성한 제의 공간이었습니다. 실제 발굴에서는 청자와 분청사기, 백자 조각은 물론 토제마(土製馬) 다섯 점과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어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오랫동안 제의가 이어져 온 성소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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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동 국사봉 유적 안내판 사진=한소민 소장
출토 유물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흙으로 만든 말, 토제마입니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먼저 몸통을 빚은 뒤 다리와 꼬리, 눈과 안장을 따로 붙여 완성한 모습에서 정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선조들은 산신이 이 말을 타고 마을을 두루 살피며 액운을 막아 주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이 작은 흙 말을 봉헌했습니다. 토제마와 함께 발견된 상평통보를 두고는 신과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말에게 주는 품삯이었을 것이라는 해석과 신에게 바칠 말을 마련하기 위한 폐백이라는 등의 흥미로운 해석도 전해지지요.

전국에서 출토된 토제마는 800여 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성곽이나 제의 공간 등 공동체의 안녕과 안전을 기원하던 장소에서 발견되었지요. 전북 부안의 죽막동 유적처럼 해상 교통로의 요지에 자리한 제사 유적에서도 확인되며 하남 이성산성, 천안 위례산성, 순천의 옥룡산성과 광양의 마로산성 등 성곽 유적에서도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특히, 마로산성은 300여 점의 토제마가 발견된 국내 최대의 유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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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죽막동유적토제마-국립전주박물관 /유희태 이야기가있는역사문화연구소장 제공
토제마가 산성에서 많이 출토되는 것은 산성이 단순한 군사시설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줍니다. 높은 산에 자리한 산성은 적의 침입을 막는 군사적 요충지인 동시에 하늘과 가장 가까운 신성한 제의 공간의 기능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국가와 지역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가 이루어졌고, 토제마는 그 의례에 올려진 제물 가운데 하나였지요. 무수동의 국사봉 유적 역시 보문산성과 사정성 사이에 자리한 군사적 보루이자 제의 공간이었을 테지요.

토제마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대부분이 목과 다리가 떨어진 상태로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훼손은 제사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행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민간에서는 이를 두고 신의 세계로 떠난 말이 다시 인간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부러뜨렸다거나 오랫동안 신령을 모시고 다녀 다리가 닳았다는 등의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했습니다.

(제2부에 이어)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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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동 국사봉 유적 출토 토제마 /강성복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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