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대전은 빠르게 성장해 온 것에 비해 이런 기록을 모으고 남기는 일에는 다소 소홀했다. 조금 아이러니한 점도 있다. 국가기록원 본원이 대전에 있지만 정작 '대전의 기록'을 전문적으로 모으고 보존하는 대전기록원은 없다. 기록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우리 도시의 기억을 담을 집은 없는 셈이다.
기록원이라고 하면 오래된 문서를 쌓아놓는 창고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록원의 역할은 훨씬 크다.
예를 들어 도시개발이나 도로 건설, 재개발 사업 하나를 추진하더라도 수많은 결정과 논의가 오간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시민 의견은 어떻게 반영됐는지, 사업은 어떤 과정을 거쳐 추진됐는지를 제대로 남겨놓아야 다음 세대가 같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는다. 개발이나 인허가, 보상과 관련된 자료는 때로는 시민의 재산과 권리를 지켜주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 공공기록이 "대전시는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를 보여준다면 시민기록은 "대전시민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들려준다.
재개발로 하나둘 사라지는 골목의 모습도 기록해야 한다. 대청호 건설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수몰민들의 기억도 남겨야 한다. 원도심에서 오랫동안 가게를 지켜온 상인, 대흥동과 원도심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예술가, 각 마을에서 주민들이 직접 모아온 사진과 생활자료도 마찬가지다. 지금 모으지 않으면 몇 년 뒤에는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면 대전기록원은 어디에 만들어야 할까.
필자는 옛 대전부청사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937년에 지어진 옛 대전부청사는 대전 지방행정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건물이다. 원도심을 대표하는 근대건축유산이기도 하다. 현재 원형 복원이 진행되고 있지만 복원 이후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바로 이 공간에 '기록'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 보면 어떨까.
물론 옛 대전부청사 전체를 문서 보관창고나 사무실로 만들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시민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열린 기록문화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좋다.
가령 '대전 100년 전시관'을 만들고 시민들이 옛 사진과 자료를 직접 찾아볼 수 있는 열람실을 둘 수 있다. 어르신들의 삶을 기록하는 구술채록실, 시민기록학교, 마을기록단 교육공간도 운영할 수 있다. 전문적인 보존서고와 행정기능은 별도의 시유 건물을 활용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근대건축물의 원형도 지키면서 시민들이 일상에서 기록을 만나는 공간도 만들 수 있다.
대전기록원은 원도심에도 새로운 힘이 될 수 있다.
옛 대전부청사 주변에는 옛 충남도청과 대흥동, 테미오래 등 대전의 근현대사를 보여주는 공간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들을 서로 연결하면 '기록-역사-문화'를 잇는 새로운 원도심 문화벨트도 만들 수 있다.
예산이 걱정된다면 처음부터 거대한 신축 기록원을 만들 필요도 없다. 경남과 청주처럼 기존 공공건물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대전도 사용 가능한 공공자산을 활용하고, 디지털 기록부터 체계적으로 정비하면서 조직과 기능을 차근차근 키워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대전의 기록은 대전이 책임지고 남긴다'는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이제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 대전시는 대전기록원 설립을 공식적인 정책 의제로 제시하고 관련 조례와 추진체계를 준비해야 한다. 행정만 나서기보다 역사·문화 전문가와 기록활동가,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옛 대전부청사 복원 과정에서도 앞으로 시민 기록문화공간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우리가 오늘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골목과 시장, 가게와 사람들의 이야기는 10년, 20년이 지나면 대전의 소중한 역사가 된다.
하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사라진다. 한 번 사라진 기억은 돈을 들인다고 다시 만들어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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