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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
무거운 일상에서 잠시 떠나 쉼이 절실해지는 때, 그중 제일 가볍고 쉬운 일은 음악에 기대보는 것이다. 표현이 강한 음악일수록 감동의 경로는 쉬워진다. 이때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은, 파도 소리와 신비로운 동굴의 황홀함에 휩싸여 음습하고 경이로운 자연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음악 중 하나다. 자연이 만든 동굴 안의 서늘한 시간을 느낄 수도 있으며, 이곳과는 전혀 다른 먼 도시 한구석을 엉뚱하게 상상할 수도 있다.
일본의 개화기, 동경을 주축으로 한 관동의 목수들은 가본 적도 없는 서양 것을 닮은 '의양풍 건축' 의 시대'를 만들어 냈다. 개항장 요코하마의 석조와 조적조로 이루어진 건축 들은 서양의 역사시기에 등장한 종교적 의미의 공간 표현과 바로크 등 시대가 보이는 미메시스를 통해 자연스레 역사적 시간과 감동을 탐닉한 것이다. 예술에서 보통 모방이라 불리는 '미메시스'는 긴 역사를 가진다. 고대 그리스 플라톤이 제창하였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명확하고 순하게 인간의 본마음으로 풀어주었다. 따라서 표절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반복적인 변화 또는 재현이라 알려진다.
건축에 드러난 시간, 시간이 보이는 건축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음악의 경우는 보이지 않는 소리로 전하는 공간과 시간(건축)을 드러내며, 건축은 보이는 시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음악)으로 보여주며 느끼게 한다. 공간과 소리의 절대성을 벗어나 쓰고자 하는 방식과 느끼고자 하는 것으로 표현을 구성하는 것이다.
한 예로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와 같은 건축의 빈 공간을 닮은 음악은 텅 비워진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소리의 미메시스를 느린 비통함으로, 또한 슬픔과 장중함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표현은 '무엇 을 보여주는가'라는 것이다. '돌 하나를 묘사하는 데에도 그것에 가장 알맞은 단 하나의 낱말을 찾았다' 는 '보바리부인'의 프랑스 작가 구스타프 플로베르와 같은 작가도 있다. 사물을 정확히 묘사하려 한 그의 문학적 정서를 닮은 에릭 사티의 명상음악 '짐노페디'는 플로베르의 이야기와 적중한다. 이런 문학과 동질의 감성을 음악에 담으려는 노력은 건축이 시간을 공간에 담으려는 것과도 일치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속에도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음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될 때가 많다. 멘델스존의 친구 클링게만은 멘델스존과 같이 '핑갈의 동굴'을 본 후 '거대한 오르간의 내부처럼 어둡고 소리가 울리고, 아무렇게나 만들어져 있으며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라고 어둠으로만 묘사한데 비해 멘델스존의 감흥은 감미롭게 명작으로 태어난다. 영국의 시인 '존 키츠'가 느낀 것처럼 멘델스존은 '바다가 끊임없이 그곳에서 부서지고 있다. 장엄함과 웅대함, 그리고 광활함 그것은 가장 훌륭한 대성당을 능가한다.'라고 공간과 시간을 음악으로 풀어 내었다. 두 사람의 작업은 다르지만 '신이 만든 거대한 사원 같다'는 점에서 비슷한 감동을 음악과 시로 풀어냈다. 스코틀랜드의 거센 바닷바람이 동굴을 스치며 그려낸 멘델스존의 음악은 거센 바다를 머금은 스카치 위스키의 짙은 내음과 변화무쌍한 바다의 모습을 동시에 담은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시간으로 빠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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