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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으로] 공존의 지혜

이성만 배재대 교수

이상문 기자

이상문 기자

  • 승인 2018-08-27 09:58

신문게재 2018-08-2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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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만 배재대 교수
국가든 조직이든 위기가 닥치면 구조개혁을 들먹인다. 근래에 대학의 위기가 부각 되면서 가장 많이 회자 되는 것이 구조조정이다. 경영학에서는 기업에서 성장성이 희박한 사업 분야는 축소·배척하고, 중복사업은 통폐합하고, 기업 인원은 감축하는 등 군살 빼기 전략이 구조조정, 곧 구조개혁이다.

대학의 뿌리는 서양의 중세에 있다. 당시의 학습법은 귀족 학생을 중심으로 원문을 읽고 질문하고, 질문에서 토론을 이끌어내는 식이다. 그래서 학생에게 스스로 인식하고 생각을 개발하여 그 생각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변증법적 지식 훈련으로 유도한다. 당시는 모든 학문이 '신학의 하녀'이듯 파리대학으로 대표되는 신학부는 대단했다. 오늘날의 교양학부는 옥스퍼드대학의 학예부에서 출발했다. 학문과 교양을 갖춘 사람, 곧 일반인과 차별화된 '자유인'을 위한 학예이자 교양이었다. 교양과목 수준은 오늘날의 중등학교 수준에 불과했다.

근대적인 대학의 시초는 베를린대학과 하버드대학이다. 하버드의 전신인 하버드칼리지도 특정 종파의 학교였지만 종파로부터 자유로웠고 자유학예의 교양교육, 인문주의 학풍을 중시했다. 하버드가 세계의 대학으로 성장한 것은 낡은 칼리지의 튜터제도를 버리고 베를린대학으로 대표되는 연구방식의 도입과 전문대학원 설립으로 학문과 과학 연구를 위한 연구종합대학으로 혁신한 때문이다. 하버드의 또 다른 특징은 학부 즉, 교양교육 학풍이다. 그렇다고 인문주의나 인문학에 매달리지 않고 사회적,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다원적 교양교육을 한다는 점이다.



베를린대학은 학문과 교양의 일치, 권력과 일상에서 벗어난 '학문의 자유'라는 대학 정신을 추구했다. 중세대학이 성직자 양성(파리대학)과 교양인 배출(옥스퍼드대학)이었다면, 베를린대학은 전문직 중심 '교양시민계층' 창출이었다. 그러나 '빵을 위한 학문'에의 혐오와 '철학적 두뇌'의 지나친 강조는 대학을 비사회적·반현실적 '학자공화국'으로 만들었다. '학문과 사회', '학자와 시민'을 적대적 관계로 설정한 베를린대학의 이념과 학풍은 근대 시민사회 확립이나 사회적 공공성 창출과는 거리가 있었다.

한편 고등교육의 대중화는 규모나 기능에서 극히 다원적인 '멀티버시티'를 출현시켰다. 과거 대학은 일부 엘리트 계층의 대학이었고 학위증서가 신분의 징표이자 권력이었다. 멀티버시티에서는 지식, 학문, 교육이 산업 친화적 과학을 중심으로 분화되고 전문화되었다. 대학이 산업화에 편승하여 관리되고 운영된 것이다. 산업 과학의 우위는 교육과 연구의 불균형, 인문과학과 자연과학, 교양학과 전문학,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이처럼 산업화에 오염된 대학과 산업사회에 대항한 인문주의적 투쟁이 1968년 서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대학혁명'이다. 개혁모델의 사례가 인문주의적 교양과 담론의 학풍을 복원한다는 버클리대학의 개혁 프로그램이다. 교양학과 전문학, 교양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지식인 창출을 지상 과제로 간주한다.

미국대학에서의 교양교육은 지식의 단순한 전수가 아니다. 사물에 관한 종합적 이해, 비판적 인식 능력 함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양한 과목들을 기본 주제 중심으로 구성?종합하여 직업적 전문성을 넘어 폭넓은 식견과 지성을 갖추게 하여 공동체의 공공성을 자각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교양교육 교수자는 중진교수이고 명예가 되고 있다.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과는 양적?질적으로 배치되는 대목이다.

최근에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기본역량진단 결과는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첫 단추이다. '평등'의 논리가 아닌 '우월성'의 논리로 선택과 집중에 의한 구조개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과 AI시대에 대항하려면 융·복합, 문화,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식의 주장은 유치한 상상력이다. 핵심은 교양학과 전문학 즉, 학부와 대학원의 바람직한 조화를 얼마나 구현할 수 있느냐는 사회적 공존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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