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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66화. 대청호 없었다면 어떤 禍 벌어졌을까

물 없는 洑는 무용지물이다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18-08-31 00:00
작년에 국토교통부 정책기자로 활동했다. 매달 주어지는 미션에 따라 취재를 마치고 때론 인터뷰도 자주 했다. 그중의 하나가 2017년 6월 26일자로 업로드 된 기사 <대청댐은 왜 가뭄 걱정이 없을까?>이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대청호(大淸湖), 즉 '대청댐'은 대전과 충북의 경계에 있다. 따라서 대청의 '대'는 대전이고, 청은 '청주'를 가리키는 것이다.

홍수를 막고 가뭄 걱정까지 더는 데 있어 단연 일등공신이자 대전.충청권의 명실상부 '젖줄' 역할을 하고 있는 대청댐은 대전광역시 동구와 대덕구를 비롯하여 충북 청원군·옥천군·보은군 등 4개 군, 2개 읍, 11개면에 걸쳐 조성된 인공호수다.



저수면적은 72.8㎢에 이르고 호수의 길이는 약 80㎞에 달한다. 저수량은 무려 15억t으로, 저수량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호수다.

가장 큰 호수는 강원도에 있는 '소양호'로 27억t이며, 두 번째로 큰 곳은 '충주호'로서 저수량은 27억 5000만t으로 알려져 있다. 대청댐 건설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라고 전해진다.

이 시기엔 거의 해마다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었다. 따라서 이를 방지하고, 수돗물 등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한다는 목적에 따라 대청호가 조성된 것이다. 8월 28일에 이곳 대전엔 새벽부터 삽시간에 14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졌다.

이로 인해 당시 야근 중이던 나는 건물 안으로까지 밀려든 빗물을 제거하느라 그야말로 '죽을 둥 살 둥' 그렇게 빗물 침입 방지에 총력을 기울였다. 가까스로 그 작업을 마치자 불현듯 집 걱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내에게 급히 문자를 보냈다. "여긴 물바다인데 우리 집은 괜찮아?" 다행히 별 탈이 없대서 안심했는데 이는 아마도 인근의 대청호가 커다란 그릇 역할, 예컨대 댐(dam)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 준 덕분이지 싶었다.

여기서 잠시 '집중호우'의 무서움을 새삼 떠올려 본다. 지난 8월 27일에도 야근을 들어왔다. 출근 전부터 비가 내렸지만 빗줄기는 그다지 굵지 않았다. 따라서 홍수의 심각성이 그토록 심각한 줄은 정말 몰랐다.

동료와 교대하여 안내데스크로 올라온 시간은 8월 28일 새벽 1시. 비는 밤새도록 내렸다. 오전 5시가 되자 뇌성벽력(雷聲霹靂)이 천지를 호령하기 시작했다. 천둥소리가 요란하고 벼락까지 번쩍거리면서 빗줄기는 점차 굵어지기 시작했다.

지하 경비실에서 눈을 붙였던 동료가 올라오기에 교대를 하고 지하로 내려갔다. 밤새 고단했던 심신을 지하 3층 목욕실에서 씻은 뒤 주간 근무자가 출근하기만을 기다릴 때였다. 급히 전화벨이 울었다.

순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얼른 올라오세요! 빗물이 역류해서 건물 안으로 마구 들어오고 있어요!!" 혼비백산하여 지상 1층으로 올라가니 동료경비원이 가득한 빗물을 쓰레받기를 이용하여 쓰레기통에 담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폭우, 아니 차라리 홍수(洪水)를 방불케 하는 거대한 빗물은 급기야 역류현상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건물 안으로 마구 들어차는 빗물은 건물의 중추이자 허리인 엘리베이터 앞까지 진군했다.

빗물이 그 안으로까지 들어찬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첫째 엘리베이터가 모두 올스톱될 건 기본옵션이었다. 다음으론 '현장방어 대처 부족'이란 죄목(罪目)으로 해고가 뻔했다.

가뜩이나 무인주차기 설치가 완성되어 경비원을 줄이려는 낌새가 역력한 즈음이다.

또한 경비원은 비단 사람과 차량의 통제 뿐 아니라 홍수의 막음에 있어서도 혁혁한(?) 전과(戰果)를 도출해 내야 하는 직업이다. "그래 가지곤 어림도 없어. 어서 방재실 직원에게 연락해서 펌프 가지고 올라오라고 해!"

방재실도 우리 경비원처럼 비상 근무자가 한 명 매일 밤 야근을 하는 때문이었다. 그가 올라와서 펌프로 물을 빼내기 시작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때마침 건물 청소를 담당하는 미화팀의 여사님들도 출근하기 시작했다.

미화팀 반장님에게 연락하여 건물 안에 들어찬 물의 제거부터 같이 하자고 부탁했다. 그렇게 공포의 홍수와 한 시간의 사수(死守)에 다름 아닌 총력전을 펼친 덕분에 빗물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까스로 제어할 수 있었다.

온몸과 구두까지 모두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지만 어쨌든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안도감에 비로소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귀가하여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나자 지인들로부터 전화와 문자가 쇄도하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니 대전이 물바다라는데 괜찮으냐는. 고마운 마음에 가식의 의연함을 드러냈다. "나(저)는 술 먹고는 죽어도, 물에 빠져선 안 죽(습니다)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진짜 + 정말로 식겁(食怯)했다. 집중폭우엔 장사가 없다.

C일보 8월 28일자에 <지역 반발에… 공주洑 수문 9개월 만에 다시 닫는다>가 게재되었다. 충남도청의 도민리포터로도 활동하는 터여서 잘 아는데 명불허전의 '백제문화제'가 오는 9월 14일부터 9월 22일까지 충남 공주시와 부여군 일대에서 펼쳐진다.

기사의 내용처럼 완전히 개방했던 금강 공주보(洑)의 수문을 다시 닫는다는 것은 가뭄에 따른 용수 확보와 더불어 공주 지역의 축제인 백제문화제의 성공을 위한 주민들의 보 수문 폐쇄 요구가 이어진 데 따른 조치 '덕분'이었다.

공주의 백제문화제는 공산성 아래 금강과 부여의 백마강 등지에서도 펼쳐지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황포돛배와 유등(流燈)놀이, 그리고 금강횡단 보행교 등의 야경(夜景)은 실로 장관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번 공주보의 수문 폐쇄는 일시적이라는 사실이다. 백제문화제 행사가 끝나면 공주보 수문은 다시 완전히 개방된다고 하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당연한 상식이겠지만 금강과 백마강에 물이 없다는 건 유명무실의 격화소양(隔靴搔?)이자 각주구검(刻舟求劍)일 따름이다.

댐과 보를 지난 정부의 적폐 대상으로 몰기보다는 해당주민들에게 어떠한 이해득실이 있는지를 먼저 따지는 셈법이 우선 아닐까? 강조하건대 만약에 대청호가 없었다면 어떤 화(禍)가 벌어졌을까?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스럽다.

대전에는 대청호 외에도 '갑천'과 '대전천', 그리고 '유등천'이라는 3대하천이 널찍하여 튼튼한 가뭄과 홍수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유비무환(有備無患)에 대비코자 하는 평소의 마음가짐과 치수(治水)정책의 실천이 가져다 준 결실이라는 느낌이다.

태평성세를 일컫자면 쉬 중국의 요순(堯舜)시대를 거론한다. 현재와 달리 과거엔 가뭄이나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그 책임이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에게 돌아갔다.

즉 군주가 덕이 부족해서 백성이 고통을 겪는다는 것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물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 즉 치수(治水)였다.

중국의 전설적인 황제였던 순(舜) 임금에게는 백성을 잘 다스렸던 고요(皐陶)와, 홍수 등 자연재해에 잘 대처해 해결했던 우(禹)라는 탁월한 두 신하가 있었다. 순 임금은 둘 중에서 자신의 후계자로 우를 정했는데 이는 물론 그가 물 관리를 탁월하게 잘 한 덕분이었다.

보(洑)든 댐이든 본연의 목적은 충분한 수량의 확보다. 넉넉한 물은 가뭄에도 요긴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까지 된다. 반면 텅텅 빈 댐과 보는 농사에 있어서도 치명적이다. 공주보와 세종보에도 물이 없다면 농사는 과연 무엇으로 지을까?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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