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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현의 재미있는 고사성어] 제2강 괘산원우(快山寃牛)

장상현 / 인문학 교수

김의화 기자

김의화 기자

  • 승인 2020-01-14 00:00
'快山寃牛(쾌산원우)'는 '원통하게 죽은 소'를 뜻하는 고사성어다.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항상 억울함과 불만이 존재한다.

그 이유를 필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불만은 공평하지 못한데서 생긴다.' 공평함이란 지극히 간단하다. 자기 분수에 맞는 조건에서의 공평함이다.



예를 들면 대 그룹 임원의 억대연봉을 받는 사람과 중소기업의 부장은 연봉차이가 많다. 그러나 연봉이 적은 사람이 억대연봉을 받는 사람과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일하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직장에서 같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의 급여가 1,000원만 차이가 나도 적은 사람은 불평을 한다. 공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조건에서 공평하지 못하면 불평이 생기는 것이다.

쾌산원우의 글자는 快(쾌할 쾌) 山(뫼 산) 寃(원통할 원) 牛(소 우)이다. 내용의 출전은 孤山遺稿(고산유고) 雜著(잡저) 敍懷(서회)에 있다. 이는 자신은 옳은 일에 매진했으나 도리어 죄를 얻게 됨을 비유한 것이다

정철(鄭澈), 박인로(朴仁老)와 함께 조선시대 삼대가인(三大歌人)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字 約而, 號 孤山: 1587-1671)는 효종(孝宗)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관련하여 산릉(山陵)문제와 조대비 복제(趙大妃 服制)문제가 대두되어 송시열, 송준길 등 노론파에 맞서 상소로써 항쟁했으나 과격하다고 하여 1661년(현종2) 함경도 삼수(三水)에 유배되었는데, 나이 74세였다.

윤선도 자신은 오직 나라를 위한 충정으로 글을 올렸을 뿐인데 이렇게 북쪽 변방에 유배되어 장차 천하의 궁벽한 곳에서 죽음을 맞게 될 처지를, 쾌산원우(快山?牛)에 빗대어 '회포를 서술하다(敍懷)'를 썼다.

옛날에 쾌산(快山; 평안남도 영원군의 眞山)의 농부가 밭을 갈다가 피곤하여 쟁기를 놓고 잠시 언덕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이때 호랑이가 나타나 농부를 잡아먹으려 하였다. 이를 본 농부의 소가 호랑이에게 달려들어 힘껏 싸워서 마침내 호랑이를 쫓아 버렸다. 호랑이는 달아났고 밭은 짓밟혀 엉망이 되었다. 농부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일을 하려고 밭을 보니 온통 소발자국과 더불어 밭은 엉망이 되어있었다. 낮잠 때문에 전, 후 사정을 알아볼 겨를도 없이 농부는 화가 치밀었다

호랑이로부터 주인을 구해낸 이 용감한 소는 당연히 농부로부터 상(賞)을 받아야 하는데…… 농부는 소가 호랑이를 쫓아내느라 밭을 엉망으로 만든 것은 모르고, 밭을 망쳤다며 불같이 화를 내고는 소를 죽여 버렸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이를 일러 '쾌산의 억울한 소(快山寃牛)'라고 부른다.(不知牛之爲逐虎而躪田。遂怒其牛而殺之。世稱快山?牛)。

고산은 늙은 신하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올바른 주장을 펴다가 북쪽 변방에 유배되어 죽음을 맞게 되었으니 '쾌산의 억울한 소'는 바로 자기라 생각했다.

"필부의 원통함이야 비록 죽는다 한들 말할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도,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이 이렇게까지 뒤집혀져 장차 나라의 사정이 좋아질 것을 기대할 수도 없게 되었으니 너무도 한심하지 않은가. 나라를 사랑하는 자가 진실로 드물구나. 사람이 누구나 제 몸을 사랑하면서도 또한 생각이 여기에 미치는 자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옛말 그대로, 큰 집 한쪽에 불이 붙어 불길이 치솟고 있는데 제비는 집 속에서 새끼와 조잘대며 그 불길이 저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것도 모른다는 격이라. 그저 슬플 뿐이다. 유사성어로는 토사구팽(兎死狗烹) 득어망전(得魚忘筌), 조진궁장(鳥盡弓藏)등이 있다. 우리는 이 고사(故事)를 통하여 생활 속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사건이 생기면 자세한 내막을 알아보고 적적한 조치를 해야 함.

시비(是非) 와 사정(邪正)을 명확히 판단하는 지혜를 구비해야함

※愛國者固鮮矣 人莫不愛身(애국자고선의。인막불애신)

나라를 사랑하는 자는 원래 드문 법이고, 사람마다 자기 몸을 아끼지 않는 자는 없는 법이다.

비단 쾌산에서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소뿐만이 아니다. 세상에는 원통하고 억울한 일이 참 많다.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한 번 이상은 다 당해보았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와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임금께 직접 고할 수 있도록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하여 억울한 백성의 한을 다소 풀어 주었다. 그리고 조선중엽 때는 격쟁(擊錚)이라는 제도로 죄 없이 억울하게 당한 자들을 풀어주기 위한 또 다른 제도를 시행하였다.

현재는 법원의 판단으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 법은 만인에게 공평해야하고, 법을 집행하는 자들은 인격과 양심을 걸고 법을 대해야한다.

법 집행의 잘못으로 '쾌산원우' 처지가 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상현 /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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