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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첫 철도마을 ‘남관사촌’ 한 채만 남아... 근대문화유산 보존 목소리 고조

대전시 정동 1-13번지, 남관사촌 중 남은 마지막 한 채
1905년~1910년 건립 추정 대전관사촌 중 가장 오래돼
전문가들 "철도도시 대전 조명, 역사 희소성 매우높아"

한세화 기자

한세화 기자

  • 승인 2022-05-01 15:36

신문게재 2022-05-02 2면

남관사-정면
대전시 동구 정동 1-13번지에 남아있는 철도관사촌의 '남관사'건물 외부 모습. <사진=한세화 기자>
대전 철도관사촌 중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남관사촌'의 근대문화유산 보존 목소리가 높다.

소제동에 남아있는 동관사촌보다 최소 20년 이상 먼저 건축되었고,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돼 현재 한 채만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희소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다.

근대건축 전문가들은 전부 소멸한 것으로 전해진 남관사촌의 발견 자체가 원형보존을 논하기에 앞서 희소성 측면에서 철도관사촌계의 보물에 준하는 근대건축물이라며 입을 모은다.

지난 29일 기자가 직접 찾아가 본 남관사(대전시 동구 정동 1-13번지) 건물은 대전역광장 왼쪽, 대전역전시장 안 골목 깊숙이 들어앉아 있었다. 현재 민간소유로 60대 세입자가 살고 있었으며, 소유자는 전북 장수군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관사-천장과벽-욕실
남관사 건물 내부모습. (왼쪽)천장과 벽체의 나무마감재 (오른쪽)욕실로 사용 중인 공간. <사진=한세화 기자>
세입자의 배려로 집 안의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며, 남관사 발견 이후 내부 확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과 앞쪽 3면으로 방이 있었으며, 오른쪽 큰방과 왼쪽의 또 다른 방과 주방이 연결된 형태였다. 욕실 공간과 함께 벽체와 출입문 자재 등 내부 곳곳에서 당시의 건축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외벽은 앞쪽에 타일재로 마감, 벽채 측면은 나무판을 덧댄 형태로 당시의 건축기법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지붕의 슬래브나 천장 마감재 등 변형된 부분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론 대체로 원형이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2020년 기억리서치 프로젝트 '대전의 마지막 철도마을 소제동' 보고서에 따르면, 충남도청 대전 이전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33년 호남일보사가 제작한 '최신대전시가지도'에 대전역을 중심으로 남과 북, 동쪽에 각각 3개의 철도관사촌을 표시했다.



여러 지도와 사진 자료 등으로 추정해볼 때, 남관사촌이 가장 먼저 생겼으며, 이어 삼성동 방향 정동가도교 부근의 북관사촌과 소제동의 동관사촌이 각각 조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관사-왼쪽외벽마감재
남관사 건물 왼쪽의 벽체 모습. <사진=한세화 기자>
대전역 관련 건축물이 소제호 매립 시점인 1927년 이전 조성과 대전역에 초 근접해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남관사촌은 철도부설 시점인 1905년~1910년 사이에 형성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현재 소제동에 남아있는 동관사촌은 소제호 매립 후인 1930년~40년도에 형성된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전쟁 당시 전소된 것으로 알려진 남관사촌이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대전의 가장 오래된 철도관사촌이라는 점에서 보물에 따르는 근대건축물이라는 평가다.

이희준 대전대 건축학과 객원교수는 "남관사 건물은 원형 훼손의 정도를 논하기에 앞서 중요도와 희소성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근대건축물이며, 그동안 소유주와의 접촉 불발 등으로 내부까지 확인할 순 없었다"며 "철도와 함께 형성·발전한 근대도시 대전의 근간을 나타내는 중요한 근대건축물이기에 반드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동 목원대 명예교수도 "설령 원형이 훼손됐다 하더라도 남관사 건물은 존재 자체가 지니는 역사적 희소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고치고 다듬는 등 근대문화재 지정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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