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
  • 뉴스

[독자칼럼]시장의 권한에 대한 소견

박 헌 오<시인>

한성일 기자

한성일 기자

  • 승인 2022-06-07 08:49
  • 수정 2022-06-10 01:53
28104_365699
대전의 역사에 바치고자 한 편의 글을 쓴다.

시민이 선거를 통하여 뽑는 시장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

법률로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법 제정의 원천이 되는 상위의 영역에 천부적인 이념이나, 자연의 법칙이나, 막아설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나, 시민과의 변경할 수 없는 약속이 존재한다. 지나온 역사의 주인인 시민이 있고, 미래의 주인이 될 시민이 있다. 당대의 시민은 과거 시민이나, 미래 시민의 신성한 권리를 지켜줘야 할 부분이 있다.



최근에 대전의 보문원두에 건립된 대전공설운동장 종합경기장을 철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현재의 한밭운동장인 대전공설운동장을 철거하는 일은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의견을 얼마나 정중히 물어본 것인지 모르겠다.

첫째, 대전공설운동장은 1950년대에 충청남도 도민의 성금과 피땀 어린 노력이 합해져서 건립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 길이 남길 도민의 자산으로 여기고 추진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파기할만한 정당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발생했느냐의 문제에 대하여 정당한 절차에 의해서 정서적으로, 역사적으로, 상식적으로, 합리적으로 결정되었는지 근거를 제시하여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로 역사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따져보았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서 보존하는 기준은 50년 이상으로 보존의 가치가 있느냐를 평가하여 유형문화유산이나 기념물 등으로 지정하고, 그 중요도에 따라서 국가문화유산이나 지방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것으로 안다. 중부권 최초의 종합경기장을 도민 전체의 정성으로 건립되었고, 몇 번의 증·개축을 통하여 서울운동장보다도 더 훌륭한 경기장으로 조성하였다는 자부심을 가져왔으며, 제60회 전국체전을 비롯하여 앞뒤로 여러 번의 전국체전과, 수많은 체육 경기는 물론 60여 년 동안 시민광장으로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축제와 대회와 행사들이 열린, 대한민국 중부권의 역사적 명소이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주요 건축물들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해방기 6.25 전쟁으로 파괴된 국토에서 기진맥진한 국민정신을 북돋워 일으키는데 전국체육대회는 소중한 역할을 감당한 최고의 충청권 명소가 대전공설운동장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즈음 제기되고 있는 미래문화유산이란 점에서도 대전공설운동장은 허물 수 없는 민족자산이다. 해방 이후 충청권의 대표적인 건조물 제1호가 되는 이 보물을 4년이나 8년 시정을 맡은 시장이 헐어버릴 권한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

셋째, '철거 전 기록화 사업'이란 문건 제목을 들은 바 있다. 서울의 사대문을 사진을 찍어놓고 건축설계대로 기록해 놓고서 헐어버려도 될까? 여기서 주목할 일은 기록화해놓을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문화유산을 기록화한다는 것은 보존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이고, 기록화의 목적은 천재지변이나 재난이나 전쟁으로 인하여 훼손되었을 때 다시 복원해놓기 위한 대비책이다. 많은 문화재가 기록화되어 불의의 재난으로 소실되었다가 다시 복원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기록화하고 철거한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실책을 저지르고 말겠다고 자인하는 꼴이 아니겠는가?

특히 대전공설운동장을 갑년 체전 당시 개축하기 위한 설계를 하신 분은 우리나라 현대 건축사의 중요한 인물인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특별한 건조물인 데다, 우리 고장의 전설적인 건설업체인 계룡건설의 고 이인구 회장이 사활을 건 도전으로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24시간 피땀 흘려 신화를 이룩하였음을 인정받는 종합경기장이다.

넷째로 이 자리는 바로 공설운동장이 영구히 지켜줘야 할 장소라는 점이다. 종합운동장은 시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다. 구경도 하고,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체험도 하고, 교육도 하고, 체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광장의 역할을 할 수 있다. 대전에는 아직도 광활한 면적이 남아있는데 야구장을 꼭 이곳에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이 시설을 앞으로 쓸 수 있는 내구연수를 매몰시키는 비용, 철거 비용, 폐기물 처리 비용, 문화적 역사적 손실비용, 주민들의 이용권 제한 비용 등을 형량해 보아야 한다.

소중한 시민자산이요, 역사적 유산이요, 대전의 도시환경에 지울 수 없는 조화로움을 창출하고 있는 대전공설운동장을 헐어버리는 일은 한 시대의 시장이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므로 월권에 이르지 않기를 소망하며 대전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올리는 글임을 밝힌다.

박 헌 오<시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