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당문화원 전경. |
김미진 성심당문화원 이사 |
성심당문화원의 정체성을 묻는 말에 김미진 이사는 단박에 '종'을 언급했다. 이는 김 이사의 시아버지이자 창업주인 임길순(1997년 작고) 씨의 정신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1950년 12월 23일 함경남도 흥남부두에서 피란민 1만4500여 명을 태운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를 타고 부산으로 온 임 씨 가족은 거제와 진해 등에서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다가 1956년 늦여름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거제를 떠나 다섯 시간 가까이 달리던 기차는 대전역에서 고장으로 멈췄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임 씨 가족은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 대전역 인근에 있는 대흥동성당을 찾아갔다. 당시 고아들의 아버지라 불리던 오기선 신부를 만나 밀가루 2포대를 건네받은 임 씨는 가족의 식량으로 소비하는 대신 대전역 앞 천막집에서 찐빵 장사를 시작했다. 성심당의 첫 출발이었다.
그로부터 11년 후 1967년 지금의 케익부띠끄 자리인 은행동 153번지로 점포를 옮겼다. 지금은 금싸라기 땅이지만 당시만 해도 이곳은 중심지에서 두 블록이나 떨어진 주거지도 상권도 아닌 허허벌판이었다. 대흥동성당만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왼쪽부터 성심당문화원 건물 전경과 철거 이전된 선화동성당에서 가져온 종. |
12일 오전 성심당문화원 메아리상점 2층에서 만난 김미진 이사는 "당시 시부모님의 판단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웠고, 상권이 이미 형성된 대전역 인근을 벗어나 아무것도 없던 자리로 가게를 옮긴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며 "하지만 그때의 결단이 있었기에 성심당의 본질적 가치가 형성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종'에 대한 신념은 김 이사에게도 큰 의미였다. 성심당문화원 개원 1년여 전쯤, 선화동 모텔촌 일대에 아파트가 신축이 결정되면서 부지에 포함돼 있던 선화동성당의 이전 철거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출퇴근길에 봐왔던 성당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는 김미진 이사는 "재개발로 속절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매일 마주하면서 건물의 파편 한 조각이라도 남겨 성당을 기억하고 싶은 생각에 창문에 쓰였던 스테인드글라스와 사용했던 종을 가져와 창고에 보관했다"며 "사용처를 계획하지 못하다가 문화원을 건립하면서 외벽의 앞쪽 유리로 활용하면서 부활하게 됐고, 은행동이라는 소비의 거리에 정신을 가미하면서 '영육 밸런스'를 이뤘다"고 말했다.
성심당문화원 메아리상점 1층 모습. |
'성심당문화원'은 지하 1층과 지상 5층(4층의 복층 구조) 규모로 고시텔 건물을 개조해 꾸몄다. "빵집이 문화원을 열었다"는 소문이 성심당의 명성만큼 전국으로 빠르게 퍼지면서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 등 해외 방문객들의 관심도 크다.
김미진 이사는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시내 중심, 아파트 중심, 상권 중심이던 소비 패턴이 외곽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예전 일본 출장에서 본 경험으로 야외 전원 베이커리, 디저트 카페 형식의 소통 공간을 계획하게 됐고, 문화원을 꾸미는 데 힌트가 됐다"고 말했다.
'메아리상점'은 1층 'Cafe & Grocery'와 2층 'Eco Life&Old story'로 나눠 유기농, 친환경, 비건 그로서리, 성심당 기념품 등을 판매하며 친환경 소비를 유도한다.
문화원을 열면서 제작한 '성심당 굿즈 3종'은 리사이클 제품이다. 튀김소보로를 튀기고 남은 폐유를 재활용한 천연비누 '튀소비누'는 문화원의 시그니처 상품으로 호응이 높다. 모양만 봐선 튀김소보로를 작게 만들었나 싶을 정도로 식용 빵과 흡사해 '먹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종이상자 뚜껑 안쪽에 써 붙였다. 밀가루 포대를 재활용해 만든 '성심당 도트백'과 폐현수막으로 제작한 '파우치'도 설명을 듣기 전까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만큼 감각적인 디자인에 실용성까지 갖췄다. 지역의 향토브랜드 동아연필과의 콜라보로 탄생한 '흑심×빵심' 연필세트도 효자 아이템 중 하나다.
성심당문화원 메아리상점 1층 모습. |
9월 15일부터 12월까지 '내 인생의 돈가스'를 주제로 하는 성심당 테라스키친 30주년 기념전시도 선보일 예정이다.
4층과 복층 구조의 5층 '갤러리라루'는 1950년 흥남철수작전 당시 창업주 부부가 탔던 마지막 선박인 매러디스 빅토리아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의 인류애적인 마음을 오마주한 갤러리 공간이다. 4층에 갤러리는 개관특별전 '연결:시간을 잇다'는 성심당과 얽힌 이야기를 들은 88세의 구술 화가가 연필로 직접 그린 '구술(口述) 드로잉' 작품 100점이 전시돼 있다. 5층은 홍빛나 작가전 '소소한 마음, 나의 성심당'을 올해 연말까지 전시한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작가가 경험한 성심당의 모습과 감성을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에 녹여냈다.
지하 1층 '성심당역사관'은 1956년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된 성심당의 이야기와 철학을 담을 공간으로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성심당문화원 4·5층 '갤러리 라루'. |
1997년 임길순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고, 2005년 화재로 인한 경영 악화 등 10여 년간 차곡차곡 누적된 위기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선대의 맹목적인 신념만으로 성심당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에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자체 동력으로 성심당의 정체성을 찾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시점임을 직감한 김미진 이사와 임영진 대표 부부가 선택한 가치는 '포콜라레 정신'이었다. 이를 근간으로 한 'EoC_모두를 위한 경제'는 이때부터 성심당의 새로운 좌표가 됐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북부도시 토렌토에서 처음 시작된 포콜라레 운동은 가톨릭 정신에 기반을 둔 나눔 활동단체다. 180여 개 나라에 400여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국제조직으로 우리나라에는 2만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Eoc(Economy of Communion)는 '모두를 위한 경제'라는 뜻으로 1991년 유네스코 평화상 수상자인 끼아라루빅이 이웃사랑을 기반으로 한 경제변혁을 목표로 창설됐다. 이후 회사 수익의 15%를 직원들 인센티브로 지급, 인센티브의 20%를 Eoc 기금으로 할애했다.
성심당문화원 메아리상점 2층 모습. |
김 이사는 "초창기 보문산메아리 빵 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칼과 물티슈 정도만 중단했는데도 엄청난 양의 일회용품 절감 효과를 봤다"며 "외식사업부에서 시작한 우유팩 분리수거가 지금은 전체 부서로 확대됐고, '에코오지라퍼' 시스템을 도입해 환경보호 실천 통계를 내고, 회의를 통해 개선점을 찾는 과정을 이어가고 있다"며 환경보존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다.
실제로 메아리상점 2층에는 과거 빵공장에서 사용했던 제빵 도구들과 집기들을 재활용해 제품 선반이나 진열대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화장실 세면대로 재활용한 철재냄비와 다리미를 재활용한 출입문 손잡이 등 물건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한 김 이사의 예술적 감각이 빛을 발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김 이사는 "처음 문화원을 준비하면서 멋지고 세련된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지만, 그때마다 돌아온 내면의 소리는 '소박하지만 따뜻함을 전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100년에 걸쳐온 변화들이 최근 2~3년 새로 앞당겨지면서 온라인이 줄 수 없는 경험과 느낌을 차별화한 오프라인 공간을 선사하며 균형감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김미진 이사는 "성심당스러운, 성심당다운, 성심당스타일을 중심에 두고, 프로가 갖지 못하는 진정한 아마추어의 매력을 하나씩 천천히 구현해낼 계획"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한세화 기자 kcjhsh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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