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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각]누구의 손이 금 손인가?

[경제칼럼]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 건축사사무소 에이앤엘 대표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

  • 승인 2014-04-16 14:12

신문게재 2014-04-17 17면

▲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 건축사사무소 에이앤엘 대표
▲ 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 부회장, 건축사사무소 에이앤엘 대표
지난 달 모든 매스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기사 중에 하나가 전 대주그룹의 회장이었던 허재호씨의 일일 노역비였을 것이다.

애초 1심에서 오백억원이 넘는 벌금을 부과받았지만 2심에서 운좋게(?) 249억원으로 줄어든 벌금 미납으로 교도소 노역장에 유치된 허 회장의 하루 일당이 일반인의 1만배 수준인 5억원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통감하며 허탈감에 젖어 있었을 것이다.

중산층의 하루 일당이 10만원이라면 허 회장의 하루가 중산층은 5000일 즉, 13년이 넘는 세월이고, 250억원이면 개략 650년 정도가 된다.

건설업계에서 그에게 공사 대금을 떼인 하도급업체나 납품 대금을 받지 못한 협력업체, 공사현장에서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일당도 떼이고 망할 지경이다. 정작 원인제공자인 허회장은 그저 49일간의 청소 노역으로 탕감된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특혜와 유착의 사건일 것이다. 그의 손은 금 손인가.

시간을 거슬러 몇 개월전, 다가구주택 설계를 했다.

다가구주택은 일반 서민들이 평생 모은 돈을 투자할 수 있는 작은 건축물 중의 하나다. 일반적으로 수익성을 올리기 위해 가구분할을 많이 하는데 이 방식은 주거환경이 열악하고 주차 등의 민원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어 다른 방식의 설계를 고민했다.

면적당 수익률이 높은 1층 근린생활시설의 면적을 최대화하여 수익률을 높이고 2~3층에는 4가구 이하의 주택을 복층형 등의 다양한 형태로 구성하여 동일한 면적의 다가구보다 임대수익을 올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름대로 오래 고민하고 수차례 수정해서 완성한 이 새로운 유형의 다가구주택은 예상보다 반응이 좋았다.

그런데 한 건축주가 필자의 설계비가 다른 곳보다 비싸다며 흥정을 하자고 하는 것이었다. 폭리를 취한 것도 아니었고 보수대가보다도 낮은 금액이었지만 열심히 노력한 최소한의 대가라고 생각되어 응하지 않았더니 대뜸 '어이, 건축사님 손은 금 손이오?'라고 하지 않는가. 그 순간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전화기를 내려놓았지만 결국 설계를 하고 건축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웃긴 에피소드라 치부하기에는 너무 씁쓸한 일이었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일에 종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폭염과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공사현장에서 묵묵히 작업하는 여러 기능인들, 한줄기 로프에 몸을 걸고 고층빌딩을 청소하는 유리창닦이 전문가들, 온갖 오물과 가스가 가득 찬 하수구에 들어가 정비를 하는 분들, 전봇대에 매달려 위험한 고압전기 등을 다루는 분들, 이 외에 극한직업군이 아니어도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의 도움이 없다면 이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기나 하겠는가.

수년전, 일본의 어느 호텔 로비에서 앉아있는데 말끔한 작업복에 잘 정돈된 작업도구를 허리에 찬 유리창닦이 청년이 거의 장인 수준으로 자신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니 전문가로 느껴질 수밖에. 물론 그에 상응하는 대가와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손이 바로 '금 손'이라 생각한다.

내가 하지 못하거나 하기 싫은 일들을 천직으로 삼는 그 분들을 존중해야 하고, 열심히 일하는 그 손길들이 존중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는 서로의 가치를 인정하며 함께 나아가는데 있지 않을까. 서로를 일당 오억원의 '금 손'으로 인정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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