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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이 위인을 찾아서 사육신 충절의 상징 '성삼문'

금상진 기자

금상진 기자

  • 승인 2014-07-24 10:37
조선이 멸망하고 사육신은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고, 성삼문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의 유허지를 찾았습니다.

선생의 이름에 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데요. 이곳에서 선생이 태어나셨을 때 하늘에서 아이를 낳았느냐고 세 번 물은 일이 있어 성삼문이라는 이름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학자로 세종을 도와 역사적인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데 크게 공헌한성삼문은 어린단종을 부탁하는 세종의 유지를 받들어 단종 복위를 추진합니다.


▲ 충남도인터넷방송캡처
▲ 충남도인터넷방송캡처


황필성 / 문화관광해설사
여기 이곳은 성삼문의 탄생한 곳이며, 성삼문의 묘로 잘못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성삼문 선생의 묘가 아닙니다. 바로 저 앞에 서원이 있었는데, 대원군 정책 때 회철 되면서, 사육신들을 그곳에 모셨다가 그때 회철되면서 이곳에다가 사육신 여섯 분들의 신주를 모신 노은단이라는 곳입니다.

사실, 성삼문과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의 복위운동에 나섰던 것은, 충절을 지킨다는 유교적 명분이 우선이었지만, 궁극적으로 관료지배체제의 구현을 이상으로 삼았기에 세조의 독선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부자의 밀고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에 처해진 그의 시신은 조선 8도에 보내졌죠.그 후 무려 2백년이 지난 뒤인 숙종 때가 되어서야 역모의 혐의가 풀려 삭탈된 관직이 회복됩니다.

성삼문에게 있어 정치의 경륜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고 그의 추앙했던 덕목은 충군과 절의, 그리고 학문이었습니다.오늘날 지나치게 이해타산을 좇거나 상황에 따라 가벼이 소신을 바꾸는 세태에 우리가 진정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그의 유허비 앞에서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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