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청풍명월

[청풍명월] '아듀' 종이통장

김은주 편집부 차장

김은주 편집부 차장

  • 승인 2015-08-03 15:04

신문게재 2015-08-04 19면

“2015년 7월 급여가 입금 처리되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 날려주는 문자 한 줄이다. 월급 들어오고 한 달 가까이 되면 시들시들 말라가는 통장 잔고를 적셔주는 단비다. 하지만 안심하던 마음도 잠시, 맘 놓고 썼던 카드들이 내 돈 달라 빼가기 바쁘다. 확인할 새도 없이 여기저기 흩어진 월급. 결국 통장정리로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래. 번 돈이 얼마고 쓴 돈이 얼마구나.”

통장에 찍힌 걸 하나하나 정리하면서 씀씀이를 탓하고 저축 의욕을 불태운다. 통장은 제2의 가계부인 셈이다. 인터넷, 스마트폰 뱅킹이 활개를 치는 마당에 아직도 종이에 빼곡히 적힌 숫자에 붙잡혀 산다. 로그인, 공인인증 패스워드, 비밀번호 창은 쉼 없이 뜨는데 깜빡깜빡하는 머리가 따라가주질 않으니 애타는 일이 다반사다. 다시 은행에 찾아가 숫자조합을 만들어내고, 또 잊고…. 이즈음 되면 스마트폰 뱅킹이 아무리 편리한 '내 손의 은행'이라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쓰게 된 종이통장. CD기에 넣고 정리버튼 하나만 누르면 머릿속 복잡하게 얽혀있던 숫자들이 좌르르 시원하게 정리된다. 종이통장을 쉽게 저버리지 못하는 이유다.

그나마 이것도 이제 추억이 된다. 자녀 대학등록금, 결혼, 주택자금용…. 누군가에겐 통장 하나하나마다 의미가 새겨지고 또 다른 누구에겐 부의 상징이었던 통장이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금융감독원이 올 9월부터 2년간 종이통장의 단계적 발행 감축을 유도하는 정책을 내놨다. 종이통장을 원하지 않는 고객에게 금융사가 인센티브를 주고, 2017년 9월부터는 미발행 원칙을 적용하며, 2020년 9월부터 종이통장을 발급받는 소비자에겐 비용 부담을 지우기로 한다는 내용의 '통장 기반 금융거래 관행 혁신방안' 이다. 국내 최초 상업은행인 한성은행(조흥은행의 전신)이 1897년 첫 발행한 이후 100여년 만에 종말을 고하게 됐다.

그럼에도 지난 5월말 현재 은행계좌 중 종이통장으로 발행된 계좌는 2억7000만 개로 전체계좌의 91.5%를 차지했다. 국민 한 사람당 대여섯 개 정도는 종이통장을 갖고 있다는 통계다. 장롱 속에 묵혀 있는 통장, 쓰다만 통장도 많겠지만 아직도 꼬박꼬박 새겨지는 통장내역에 의존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발급받는 소비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키는 것은 너무 자기편의적 사고는 아닌지 재고해 볼 여지가 있다.

“잔액, 예금, 자동이체 실시간으로 어디서나 확인 가능하니 편안하지요?” “나도 압니다. 그런데 패스워드, 비밀번호 잊으면 말짱 도루묵이더라고요.”

그래도 어쩌랴. 이제 또 숫자, 알파벳, 특수문자와 싸워야 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형의 중간을 걷고 있는 아나털형 인간으로서 피곤하다.

김은주·편집부 차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 기사 모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