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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궁이]김기덕·이종환·황인용… 그 시절 전설의 DJ 오빠들

김은주 기자

김은주 기자

  • 승인 2017-07-21 21:00
▲ 왼쪽부터 김기덕·고 이종환·황인용
▲ 왼쪽부터 김기덕·고 이종환·황인용

21일 오후 11시 MBN 아주궁금한 이야기 ‘아궁이’ 223회에서는 1970~80년대 라디오 전성기를 이끌었던 ‘전설의 DJ’ 김기덕·이종환·황인용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 김기덕/사진=MBC
▲ 김기덕/사진=MBC

*오후 2시의 남자 ‘김기덕’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 헤. 헤. 헤”

지금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얻었던 라디오 DJ 김기덕의 오프닝 멘트를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70~80년대 라디오 DJ로 활동한 김기덕은 1948년 7월 25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성우 김종성이 친형이기도 하다.

김기덕은 동국대학교 연극영상학과 출신으로 1972년 MBC 아나운서로 방송계에 입문해 이듬해인 1973년 대표프로인 ‘두시의 데이트’를 맡아 22년간 진행했다.

신입아나운서 시절인 1970년대 초 오후 방송이 아예 없거나 재방송을 내보내던 버려진 시간대였던 2시를 파격적인 진행과 기획력으로 ‘DJ 격전지’로 만들면서 인기를 한 몸에 얻었다. 이에 단일프로그램 최장수 진행자로 기네스북까지 올랐으며 MBC 라디오 ‘골든마우스’를 수상하기도 했다.

인기절정을 달리던 1995년 김기덕은 방송연예계 금품수수사건에 연루돼 방송출연 등의 대가로 600만원을 받은 것이 문제가 돼 두시의 데이트를 하차했다. 이후 공백기를 거쳐 1997년 ‘김기덕의 골든디스크’를 진행했으며 2010년 은퇴하게 됐다.

이날 방송에서는 김기덕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헤.헤.헤’ 웃음소리 때문에 구박받은 사건과 생방송 중 말실수와 졸았던 사연을 직접 공개한다. 그리고 2전설의 코너 ‘팝 개그’와 ‘음악 에세이’이도 오랜만에 선보인다.

▲ 고 이종환/사진=유튜브
▲ 고 이종환/사진=유튜브

*전설의 1세대 DJ ‘故 이종환’

1970년대 팝의 전성시대를 활짝 연 개척자이자 최초로 ‘골든 마우스’를 수상한 1세대 팝 전도사 故 이종환의 라디오 인생을 돌아본다.

이종환은 1937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를 중퇴했다. 1964년 MBC라디오 PD로 입사해 ‘임국희의 한밤의 음악편지’ PD로 활동을 시작했다.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디스크 쇼’,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 프로그램으로 라디오 전성기를 이끌었다. 팝 음악이 생소하던 시절 팝의 대중화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1973년 종로에 스타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음악다방 ‘쉘부르’를 열어 70년대를 대표하는 ‘청바지·통기타· 생맥주’ 문화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쎄시봉 트리오’였던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이 이곳에서 활동했으며 양희은, 이수만, 허참, 주병진 등 많은 후배 가수들이 거쳐가면서 ‘이종환 사단’을 낳기도 했다.

원조 문화 대통령으로 불렸던 이종환은 그러나 연예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로 막강한 입김을 작용한다는 것이 때로는 구설수를 달고 살기도 했다는데…. '라디오쟁이'로 살았던 이종환은 폐암 투병하다가 2013년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 KBS 제2라디오 '안녕하세요 황인용.강부자입니다' 진행하고 있는 황인용/사진=MBN 캡쳐
▲ KBS 제2라디오 '안녕하세요 황인용.강부자입니다' 진행하고 있는 황인용/사진=MBN 캡쳐

*영원한 우리들의 DJ ‘황인용’

3. 영원한 우리들의 DJ <황인용>

밤 8시 팝의 전도사 그리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의 밤 지기였던 전설의 DJ. 황인용이 클래식 전도사로 변신했는가 하면 70세가 넘는 나이에 오디오와 사랑에 빠지고 물리학 공부까지 섭렵하고 있다고 한다.

황인용은 1940년 파주에서 태어나 경희대를 나와 1967년 동양방송의 3기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했다. 어쩌다 발들인 방송계에서 어쩌다 마주한 라디오! 발전 없던 초보 DJ를 인기 DJ로 만든 비장의 무기가 어느 여인의 사진 한 장이라는데. 그리고 1980년 11월 30일 밤 동양방송의 ‘밤을 잊은 그대에게’ 마지막 방송에서 종료 5분을 남기고 울먹였던 일화는 오랫동안 회자도고 있다. 분노와 울분으로 아수라장이었던 그날, 황인용이 대본을 던진 사연이 소개된다.

또한 6년 동안 시간 알림만 하던 비주류 방송인에서 ‘장수만세’를 통해 국민 사위로, 뒤이어 국민 오빠로 거듭난 사연이 나오며 ‘황천’로 불린 사연부터 전설의 DJ로 불리는 소감까지 전해진다.

황인용은 1982년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1997년 경기도 파주에 토탈미술관 고전음악감상실을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온라인이슈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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