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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뭐 읽지?]바우만의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잔인한 갑과 어리석은 을

우난순 기자

우난순 기자

  • 승인 2017-10-03 10:10
바우만
지그문트 바우만 /사진=연합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12절

간담이 서늘하다. 곱씹을수록 가슴이 메이고 눈물이 차오른다. 분노가 아니다. 왜 슬픔의 정서가 내 머리와 가슴 가득, 온 몸을 감쌀까. 어려서 생각했었다. 빛나는 청춘의 한 가운데서 전혀 눈부시지 않은 암담한 시절을 견뎌내며 훗날 나이를 먹으면 지금보단 사는 게 나아지지 않을까 하고. 착각이었다. 다시 한번 되새긴다. '못 가진 자들은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 못 가진 자들은 갈수록 삶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게 현실이다. 이게 세상인가.



대륙의 반도 조선의 홍길동은 율도국이라는 이상향을 세우는 꿈을 꿨다. 인류사의 한 획을 긋는 격동의 20세기가 태동할 즈음, 카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었다. "불평등한 사회는 꺼져라!" 이제 와 생각하니 이 피끓는 홍길동과 철학자 역시 순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인간의 본능은 잔인하고 지극히 동물적이다. 생각해 보라. 정의로운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애쓴 보람도 없이 이 세계는 부의 불평등이 고착화 되어 가고 있다. 체 게바라는 밀림 속에서 모기와 장대비에 시달리며 이상을 부르짖었건만 파리목숨처럼 죽임을 당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가진 자들에겐 달콤한 꿀을 선사한다. 자본주의는 가진 자의 편이다. 약자는 사지로 내동댕이쳐진다.

0.1대 99.9의 세계. 세계 최고 부자 1000명의 부를 합하면 가난한 25억명의 재산을 전부 합친 것의 두배에 달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과 불평등은 여전하고 남녀의 불평등은 OECD 국가에서 최하위다. 99.9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올라갈 사다리가 없다. 가진 자들이 그 사다리마저 치워버리고 있다. 88만원 세대, 헬조선.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이 확고해지는 계기였다. 권력자들은 기업의 편에 서서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바빴다.

이 책의 저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유례없는 불평등과 부의 편차 속에서 이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까에 의문점을 뒀다. 그것은 '거짓 믿음'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유포 때문에 가능하다고 봤다. 기업의 이윤이 늘어나고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중산층과 서민에게까지 그 효과가 재분배될 것이라는 환상 말이다. 이 예측이 얼마나 엉터리이고 허무맹랑한 지 우리는 조직 사회에서 시시때때로 절감한다. 오너의 재산 축적이 조직원들에겐 전혀 별개라는 사실. 그런데도 이 사회의 어리석은 을들은 이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감내한다. "불평등은 자연스럽고 경쟁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갑의 사탕발림을 우리는 언제까지 견텨야 하나.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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