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일제히 일어나 애국가를 경청한다
삼천리 화려 강산의
을숙도에서 일정한 군(群)을 이루며
갈대 숲을 이륙하는 흰 새떼들이
자기들끼리 끼룩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낄낄대면서
일렬 이열 삼렬 횡대로 자기들의 세상을
이 세상에서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간다
우리도 우리들끼리
낄낄대면서
깔쭉대면서
우리의 대열을 이루며
한 세상 떼어 메고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각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만세~' 재미난 영화 보러 갔다가 대면하는 머쓱함.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엄숙함이었다. 익숙함의 폭력이 일상이었다. 새들에겐 자유로운 세상이었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자화자찬하는 인간에겐 무간지옥이던 시대가 있었다. 세상은 돌고 돈다. 진보라 여겼는데 언제 또 악랄한 마귀가 드닷없이 출현할 지 모른다. 그러려니 하고 살라고 조언하는 선배의 말에 다리 힘이 빠진다. 새가 되고 싶어했다. 창공을 눈부시게 날 수 있는 날갯죽지를 더듬어 보지만 깃털 하나 솟아나지 않았다. 그러려니 하라는 선배의 말에 주저앉는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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