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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상공회의소, 그 뿌리는 항일

윤희진 경제과학부장

윤희진 기자

윤희진 기자

  • 승인 2018-02-28 14:55

신문게재 2018-03-01 23면

1윤희진(온라인용)
윤희진 부장
원래 상공회의소의 출발은 항일(抗日)이었다.

일찌감치 개방을 선택하며 경제에 눈 뜬 일본 상인들이 조직을 만들어 한반도에 상륙하자, 조선 상인들이 대항마를 만들었다. 1882년 원산상의소와 1884년 한성상업회의소가 ‘민족경제’를 기치로 처음 등장했다.

뿌리를 다진 건 갑오개혁 덕분이었다. 개혁안에 따라 육의전 등 특권을 가진 상인층이 해체되면서 ‘회사’ 설립의 봇물이 터졌다. 상공업에 대한 인식과 중요성이 확산되면서 비로소 상공회의소가 역사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활발했던 건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략에 본격적으로 나설 때였다. 러일전쟁 승리로 한껏 고무된 일본은 화폐개혁을 단행했다. 그 여파가 대한제국으로 이어지면서 금융대란이 일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상권의 중심이던 한성의 ‘운종가’(運從街)의 상인 30명이 1905년 7월 경성상업회의소를 창립했다. 이를 기점으로 도청 소재지와 개항장을 중심으로 상공회의소가 설립되거나 재건됐다.

상업회의소, 상의소, 민의소, 객주회 등의 이름은 다양했지만, 모두 일본 상공회의소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일본의 강제점령기가 시작되면서 일본인 상공회의소에 강제 통합됐지만, 우리나라 상공회의소는 민족경제를 지키려 했던 ‘항일’ 정신이 그 뿌리라 할 수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상공회의소는 현재 전국 71개 주요 도시에 있다. 그 지역 경제인들을 대표하는 최대 조직이다.

대전에는 대전상공회의소가 있다. 일제강점기이던 1932년 창립총회를 통해 1933년 설립됐다. 올해가 85주년이다.

이 대전상의가 스물 세 번째 회장 선출을 앞두고 있다. 대전 경제를 대표하는 수장이라는 권위도 있지만, 그만큼 대전 경제에 대한 책임도 막중한 자리다. 대전이 먹고살 것을 끊임없이 고민하며 대전을 먹여 살려야 하는 임무라고 하는 표현이 더 잘 와 닿는다.

하지만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명예용’ 자리를 전락했다는 혹평도 없지 않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전상의는 그동안 자신의 대표 브랜드를 만들지 못했다. 대전상의 하면 대전시민 누구나 떠오르는 브랜드가 없다. ‘제조업 기반이 약하다’, ‘유통과 소비 중심 구조다’, ‘과학과 제조, 유통 3박자가 강점이다’ 등 진단과 분석 중심의 말들만 많다. 대표 기업과 대표 제품, 대표 경영인 등을 얘기하는 것조차 잠시 생각해야 입 밖으로 나올 정도다.

3월 중순에 뽑는 대전상의 회장 선거에는 대전 경제계에서 나름대로 추앙받는 2명의 인사가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정성욱 (주)금성백조주택 회장과 최상권 (주)신우산업 회장이다. 대전을 대표하는 CEO들로, 경제인들의 선택을 받기에 충분하다.

다만, 이제 봉사하겠다는 마음만으로는 안된다. 대전상의 회장 자리는 봉사를 하라고 만든 자리가 아니다. 사재(私財)를 조금 털어 역대 회장 명단에 사진을 올리라는 건 더더욱 아니다.

책임이 필요하다. 대전 경제를 이끄는 최대 단체의 수장으로서, 책임 있는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과거 민족경제를 지키려 했던 첫 마음처럼, 대전을 움직이는 한 축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구체적으로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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