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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아침]김선자의 '아버지의 숫돌'

2018쌍매당 이첨문학상 시부문 우수상
달려온 갈바람은
지붕 위 어린 박을 쓰다듬는데
아버지의 분신 같은 숫돌에 물을 뿌려 녹슨 마음을 갈아 본다

오주영 기자

오주영 기자

  • 승인 2018-12-19 07:09
  • 수정 2018-12-20 15:09
김선자
김선자 시인
마당 한 귀퉁이

장승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숫돌

아버지는 거북 등짝 같은 손으로



새벽마다 낫을 갈아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일터로 나갈 준비를 하셨다



여덟 식구 태산 같은 짐을 낫 위에 얹고

곡예사가 되어 굽이진 길을 사셨던 세월



참빗 햇살에

등 한번 기대어 보지도 못하고

울먹이는 눈물 빛보다

시린 새벽 머언 길을 떠나셨다



달려온 갈바람은

지붕 위 어린 박을 쓰다듬는데

아버지의 분신 같은 숫돌에 물을 뿌려

녹슨 마음을 갈아 본다



돌틈사이 채송화가 졸고 있는 마당에

철없는 가을달이 뒹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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